하태원 논설위원
14,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산 베이징포럼’에서 만난 미국과 중국의 학자, 전문가들에게도 이 문제는 주요 관심사였다. 중국 측은 양국이 신형대국관계 건설에 완전 합의했다는 투였지만 미국 사람들은 떨떠름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중국 많이 컸네”라는 마뜩지 않음이 느껴졌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의욕이 넘친다. 한반도가 속해 있는 아태지역을 시험대로 삼자는 중국 제안의 이면에는 “동아시아 지역이 미국의 앞마당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의 국가이익)을 수용할 만큼 넓다”는 말은 결국 태평양의 반은 중국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격랑의 동북아 질서 혼란 속에 일본은 ‘미국 붙잡기’라는 단순명료한 카드를 택했다. 패권국이 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일동맹 강화로 응전(應戰)하겠다는 출사표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약받는 대가로 기꺼이 미국의 아태지역 이익 확보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동북아의 출렁이는 정세 속에서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의 전략 부재가 아쉽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일이 터지면 청와대 인근 간이숙소에서 밤을 지새우는 투지를 보여줬지만 국가안보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존재감은 별로다. ‘올빼미’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근면성실은 입증했지만 동북아 새판 짜기 속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평가는 안 나온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피곤해 보이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비협조 속에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강대국 세력다툼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련된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하는 숙명을 지닌 한국에 잘못된 판단은 천길 낭떠러지를 뜻한다. 패권국 세력 전이(轉移)의 역사적인 현장이 한반도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키워드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동력 상실 상태이고 ‘아시아 패러독스’의 해법으로 제시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도 공허하게 들린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창의적 해법과 함께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할 용단이 있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외교안보 라인이 박 대통령만 바라본다면 대통령이 스스로 결심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