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하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특히 산업현장의 불합리한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관련 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치로 인해 여러 문제점이 고쳐지고 있지만 피부로 실감하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산업현장 중에서도 특히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소방시설 공사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건설현장에서는 부문별로 각양각색의 시설물 공사가 진행된다. 소방시설은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재난 및 재해에 대비하는 것인 만큼 그 중요성은 다른 어떤 시설에 못지않다.
그러나 현재 소방시설은 일괄발주 방식으로 대형 건설업체가 수주해 공사를 처리하고 있다. 물론 직접 하는 것이 아니다. 소방시설 공사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가 하도급이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피해갈 수가 없다. 이는 자칫 불량제품의 사용이나 부실 공사로 이어지고 재난이나 재해 발생 때 국민 안전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그 대책의 출발점은 소방시설이 왜 부실하게 설치되고 있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도적 장치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사회의 공공안전과 가장 밀접한 소방시설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주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적정한 공사비가 확보돼야 처음부터 소방시설이 완벽하게 설치될 수 있다. 지금처럼 2차, 3차 하도급으로 이어질 경우 최소한의 공사비 마련도 불가능하다. 결국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즉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가 시급하다.
전기, 통신, 문화재 수리처럼 전체 건설공사와 분리해 발주할 경우 원도급자의 중간마진이 없어져 실공사비가 늘어나게 된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소방시설공사를 분리발주하고 있다.
최근 각종 건설공사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높아지고 깊어지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국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하루빨리 보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의 작은 외침이나 쓴소리에 귀 기울이는 세심함과 함께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책 및 제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해 실행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이춘하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