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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여성시대]3부일하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입력 | 2013-11-26 03:00:00

“일 즐겨야 버틸 힘 생겨” “문제 생기면 사표보다 해결책을”




21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차세대 여성리더 콘퍼런스는 멘토 60명과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는 멘티 250명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손병옥 WIN 회장은 멘티들에게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전문성을 쌓으라”며 “어려울 때는 조언을 구해 가며 일하고, 절대 커리어를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WIN 제공

“문화나 관습 탓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사회가 바뀌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여성이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지역사회와 나라와 세계에 변화를 일으켜 주십시오.” 일본의 여성 네트워크 ‘J WIN’의 우치나가 유키코 회장의 말에 좌중의 여성 310명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달 21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차세대 여성리더 콘퍼런스’에서였다.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WIN(Women in Innovation)이 주관한 이 행사에 국내 대기업과 다국적기업 여성 간부 약 60명이 멘토로 참석했다.
멘토들은 각자 지정된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사회생활 ‘선배’로서 멘티로 참석한 250명의 직장여성들에게 각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행사장은 궁금한 점을 앞다퉈 물어보는 250여 멘티들과 한마디라도 조언을 더 해주려는 멘토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이날 참석한 멘티들은 각 기업체에서 근무하는 사원부터 과장급까지 20, 30대 직장여성들이었다. 멘토가 된 여성 간부들은 대부분 1980년대 전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간부는커녕 중간 관리자에도 여성이 거의 없었고, 결혼하면 사표를 쓰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관행마저 널리 퍼져 있던 시절이었다. 고비를 만났을 때 회사를 관두는 여자 동료와 선후배도 많이 있었다. 이들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가정 문제로 쩔쩔맸던 사람들이다.
기자로서, 직장여성으로서, 그리고 사회생활 초년병으로서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에서 어떻게 20∼30년 동안 살아남아 간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기자는 이날 초대된 멘토들을 따로 전화나 면담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이들이 후배 직장여성들에게 주는 조언을 상하로 나눠 싣는다.


오랜 직장생활 어떻게 견뎠죠?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 이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일을 좋아하라는 거였다. 김은숙 국민은행 분당구미동지점장(49·여)은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파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고객들은 그의 상담을 받기 위해 점심시간에도 불시에 찾아왔다. 그는 이들이 헛걸음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다른 직원들은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식사도 하고 차도 한잔 마신 뒤 들어왔지만 김 지점장은 건물 식당에서 밥만 먹은 뒤 얼른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그렇다고 고객 응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노인 고객에겐 하루 종일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고, 별별 트집을 잡으며 까탈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김 지점장은 그럴 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고객이 남이 아니라 부모이고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대했다”며 웃었다.

일을 즐기면 설령 어려움이 생겨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송지윤 GE헬스케어 상무(58·여)가 그랬다. 그는 1978년부터 식품회사에서 일하다가 남편의 미국 유학을 따라가면서 일을 그만뒀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생명보험회사에 들어가 새로운 일을 배워야 했다. 9년 일하고 업무가 익숙해졌지만 남편이 다시 싱가포르에 파견되면서 3년간 또 쉬어야 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또 새 회사에서 일을 배우느라 밤샘, 주말 근무를 오랫동안 했다.

휴직과 일을 반복한 송 상무는 “일이 그저 좋다 보니 무슨 일이든 부족하면 배우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더라도 성취하는 게 좋았다”며 “사람들을 설득해 결과물을 얻어내는 게 정말 좋아서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만 왜 힘드나’ 생각 들 때는?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유독 나만 힘겹게 일하면서 온 세상의 고민거리를 다 떠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 멘토들은 “내가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고 고귀하다는 확신을 가지면 된다”고 조언했다.

강수연 ㈜한독 상무(46·여)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해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일을 그만둬야겠단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내가 맡고 있던 제품이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제품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국민 보건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상무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사회에서 나 스스로의 가치를 자각하는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기업컨설팅 회사를 세운 이영숙 얼라인드㈜ 대표(53·여)도 사명감이 있었기에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06년 회사를 세우기 전에 외국계 전자제품 회사에서 18년 근무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한국의 사업본부는 독자적으로 전원공급장치를 개발할 권한이 없었고, 미국 본사에 권한이 있었다. 제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사업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개발권을 따오기 위해 미국에 직접 가서 일을 배우고, 서류를 만들어 본사를 설득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본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았다. 이 대표는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한국도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계속 도전했다”고 말했다.

동료-상사가 질투하면?

못살게 구는 상사, 시기하는 동료, 여자라고 무시하는 부하직원을 만났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멘토들은 “혼자 끙끙 앓거나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은 답이 아니다. 악재가 오히려 기회와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컨설팅회사 에이온휴잇 양미경 상무(50·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 다니면서 난처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정리해고됐지만 양 상무만 부장으로 승진한 것. 이는 외국 본사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양 상무의 한국 동료 임원들은 “우리 회사는 여성 관리자를 둬본 적이 없다”며 불편해했다.

양 상무는 “잠시 섭섭했지만 좌절하지는 않았다. 여자라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피해의식을 갖기보다 ‘사람들이 나를 아직 못 믿는구나. 내가 더 실력을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그는 이때 회계사 시험에 도전해 자격증을 땄다.

유재하 U&Company 대표(53·여)도 광고회사에서 일할 때 프레젠테이션에서 1등을 휩쓸며 ‘PT 여전사’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회사는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그에게 맡겼고, 그는 30대에 상무 직책을 달았다. 이렇게 초고속 승진을 하다 보니 “뒷배경이 든든한 거 아니냐” “정치적인 거 아니냐”라고 험담하는 말들이 도처에서 들렸다. 유 대표는 “험담을 마음에 담아두고 하루 종일 벽을 긁고 있진 않았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을 일단 모른 척하고 내버려 뒀다. 이후 그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조용히 손을 내밀어 오히려 도움을 줬다. 나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점차 내 우군이 되었다”고 말한다.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땐?

멘토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WIN의 회장인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대표이사(61·여)는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누구 좋으라고 포기하느냐”고 말했다. 1981년에 사원으로 입사해 부사장이 된 최신애 한국리서치 부사장(56·여)도 “일을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인생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며 “문제가 생기면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해결할지를 먼저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한정아 한국IBM 상무(50·여)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말한다. 그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셋째 아이(16)를 낳은 직후인 1997년에 인사관리자로 발령이 났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지속됐다.

각종 프로젝트의 마감기한을 맞추기 위해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가 눈만 붙인 뒤 오전 7∼8시에 나오는 생활이 약 10년간 반복됐다. 도전해야 할 과제는 끝이 없었다.

한 상무는 “너무 힘들 때 종종 남편에게 ‘회사 그만둘까?’라는 말을 던져 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물으면 ‘노’였다. 누구나 힘든 순간들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이뤄낸 성과를 보면 행복했고, 그렇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샘물 교육복지부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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