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내용 자동추적 프로그램 가동
서울 중구에 있는 라디오 단파방송인 북한개혁방송의 김승철 대표는 “복수의 탈북자들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결과 휴대전화 추적 프로그램이 ‘암살’ ‘탈출’ 등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단어들을 자동으로 걸러내며, 그 결과는 보위부로 바로 넘겨진다”고 25일 밝혔다.
탈북자 박모 씨도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2012년 3월 보위부 고위 간부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손전화(휴대전화)상으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나쁜말 도청기’란 추적 프로그램 장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북한 보위부도 ‘김정은 암살, 탈출, 폭발’ 등과 같이 체제를 위협하는 단어가 들어간 휴대전화 통화 내용이 프로그램에 의해 감지되면 해당 발신자를 본격 감시하기 시작한다. 결정적 증거가 잡히면 발신자를 바로 체포한다. 박 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당 고위 간부도 잘 모른다”며 “보위부가 일반 주민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감시도 함께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추적 프로그램은 북한 전국 도(道)별 보위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휴대전화 자동 추적 프로그램까지 가동하고 있는 것은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총 230만 대에 달해 당 간부 및 일반 주민의 모든 통화 내용을 도청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초기에는 모든 휴대전화 통화를 감시했으나 사용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특정 단어를 잡아내는 도청 체제로 전환했다. 탈북자 이모 씨는 “올 7월경 보위부 내에 ‘휴대전화 통화 내용 추적 전담 부서’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전담 부서까지 설치해야 할 정도로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늘어나 체제 위협 요소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이 아닌 중국산 피처폰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같이 정액제가 아닌 북한의 이동통신업체 고려링크에서 발행하는 ‘선불카드’를 사용해 통화하고 있다. 선불카드는 장당 북한 돈으로 1120원(우리 돈 약 9140원)으로 한 장을 사면 200분 정도 통화할 수 있다. 북한의 이동통신 기지국은 보통 5km마다 설치돼 있고 정전을 대비해 기지국마다 비상전원 장치가 달려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장사 등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북한 민간경제에서 휴대전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 북한 당국도 사용을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휴대전화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 문화까지 바꾸고 있다. 북한개혁방송에 따르면 평양의 일부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휴대전화가 없으면 ‘왕따’가 되고 청진에서는 남자가 여성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 휴대전화일 정도다. 당 고위 간부에게 바치는 뇌물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도 바로 휴대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