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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로 뛰어올라 모든 배우 안아주고 싶었다”

입력 | 2013-11-26 03:00:00

영화 ‘사랑과 영혼’ 원작자 브루스 루빈, 改作 뮤지컬 ‘고스트’ 한국 공연 극찬




유령이 된 주인공 샘(주원)이 처음으로 문을 통과하는 장면. 영화 ‘해리 포터’ 제작에 참여한 마술사 폴키에브가 특수효과를 맡아 놀라운 장면을 선사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작가는 할리우드에서 하잘것없는 존재다.”

22년 전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인사는 수줍었다.

이 영화를 개작한 뮤지컬 ‘고스트’ 아시아 초연을 보기 위해 22일 한국을 찾은 브루스 조엘 루빈(70)은 “예상 못한 환대가 놀랍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 작업 제안을 여러 번 고사하다 결국 대본을 맡아 9년 만에 공연을 완성시켰다. ‘고스트’는 2011년 3월 영국 런던에서 첫선을 보여 지난해 4월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을 시작했다.

‘고스트’의 작가 브루스 조엘 루빈은 “영화의 기억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는 뮤지컬 제작을 거절했다. 하지만 주로 시각 효과에 의존해 전달했던 사랑의 감정을 음악의 힘을 빌려 표현할 수 있다는 제안에 흥분돼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90년 7월 미국에서 개봉한 ‘사랑과 영혼’은 크리스마스 무렵까지 박스오피스에 머물렀다. 한국에서도 서울에서만 관객 168만 명이 들어 1998년 ‘타이타닉’ 등장까지 외화 흥행 1위를 지켰다. 평생 어깨에 힘줄 만한 경력인데도 루빈은 “오스카는 내 묘비에 한 구절을 더할 침실 장식품일 뿐”이라고 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는 일도 드물다. 대본이 완성된 순간부터 작가는 감독, 배우, 제작자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모든 것이 글에서 시작됐음을 누구나 알지만, 현실은 그렇다.”

―생애 첫 무대 작업이었다. 뮤지컬 환경은 영화에 비해 어땠나.

“영화 촬영장에서 그래 왔듯 매슈 와추스 연출에게 ‘항상 연습실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거라며 말리더라. 그래서 ‘소품팀 옆 구석에 쥐죽은 듯 앉아 있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차츰 연습을 마칠 때마다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포옹하며 말을 건네 왔다. 서로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연습실을 채우고, 그 교감의 온기가 나중에 무대 아래 관객에게 전해졌다. 이 작품을 성공시킨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이 라이프’(1993년) ‘시간 여행자의 아내’(2009년) 등 줄곧 사랑 얘기를 천착했다.

“정신을 고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사랑뿐이지 않나. 하지만 요즘 러브스토리 작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어렵다. 영화사는 중국에 팔 3D(3차원) 영화만 찾는다. 내가 쓰는 이야기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TV쪽 사정이 낫다. 긴 호흡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몰리의 모델이 부인 블랑슈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내가 지금은 몰리처럼 도예가지만 시나리오 쓸 때는 조각가였다. 한밤중에 도자기 빚다가 사랑을 나눈 적은 없다. 이야기에 담은 사랑은 물론 아내와의 경험에서 얻었다. 사랑이 고맙게도 우리를 찾아내 47년을 함께하게 해 줬다.”

―‘도자기 러브신’을 뮤지컬에서는 후반부로 옮겼다.

“연출의 아이디어다. 무대 위에서 몸에 진흙을 바를 수 없으니까. 그 변화로 새롭고 풍성한 감정이 발생했다.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은 메아리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 거다.”

―한국 공연은 영국, 미국에 비해 어땠나.

“지금까지 본 어떤 ‘고스트’보다 뛰어났다. 상상했던 모든 장면이 완벽하게 연출됐다. 무대로 뛰어올라가 모든 배우를 안아 주고 싶었다. 한국의 뮤지컬 제작 시스템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 몰랐다. 작가로서 큰 행운이다. 뉴욕에서는 주인공 샘 1명을 찾지 못해 런던에서 데려왔는데, 한국의 샘은 3명 모두 훌륭하다.”

―두 아들도 작가 일을 하고 있다. ‘좋은 작가’란 뭘까.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티베트, 인도, 일본, 동남아를 떠돌았다. 뭔가 더 배워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인생을 살아 내야 한다.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할리우드에 간다면 뭘 쓸 수 있을까. 학창시절? 결혼 이야기? 자기 마음에 진실한 사람, 팔기 위해 쓰지 않는 사람, 무엇을 쓰고 싶은지 계속 고민하는 사람이 좋은 작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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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9일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데이브 스튜어트, 글렌 발라드 작사 작곡, 주원 김준현 김우형 아이비 박지연 최정원 이창희 출연. 6만∼13만 원. 02-577-1987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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