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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사건전후 ‘달라진 생활’ 14명 심층분석

입력 | 2013-11-26 03:00:00

소득 72% 줄어 경제고통… 인간관계 끊기고 질병 시달려




흉악범의 가족 '달라진 삶' 추적해보니

《 범죄자들의 가족은 ‘보이지 않는 형벌’을 받는다. 경제적인 부담을 떠안게 됨은 물론이고 평생 가슴에 멍에를 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어지기 때문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도 쇠약해진다. 죄인처럼 사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징역 15년 이상부터 사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흉악범 4명의 가족 9명과 4∼20년간 복역한 뒤 출소한 범죄자 5명의 가족 5명 등 총 14명을 심층 설문해 사건 전후의 삶을 추적했다. 》  

가계소득은 수감 이전 월평균 328만 원에서 수감 이후 93만 원으로 4분의 1 수준이 됐다. 응답자 중 “애초부터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답한 김은진(가명·56·여) 씨를 제외한 13명이 실질적 부양자였던 가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내나 자녀들이 일터로 나섰지만 대부분 식당 서빙 등 저임금 비정규직이었다. 강민우(가명·24) 씨는 2003년 아버지가 강도살인을 저질렀던 당시 상위권 성적의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려운 형편에 대학을 중퇴하고 대형 마트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루 11시간 일하지만 아버지가 계실 때보다 가계소득은 40% 줄었다.

친구·친척과 연락이 끊기는 등 인간관계의 단절도 나타났다.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어도 속을 터놓을 사람이 없고 혹여나 말실수를 하게 될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환수(가명·86) 씨는 경기 지역의 한 농촌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한순간 동네 사람들과 서먹한 사이가 됐다. 그는 아들이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8년째 복역하는 동안 “편하게 연락하던 친구들 절반을 잃어버렸다”고 쓸쓸히 말했다.

심적 고통에 시달리며 종교 활동에 귀의하는 비율은 높아졌다. 안희영(가명·65·여) 씨는 1993년 아들이 강도강간을 저지른 충격으로 신경쇠약을 겪자 주말마다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급격한 삶의 변화는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났다. 구체적인 질병을 새로 진단받았다고 응답한 이는 7명이었으며 1명은 산발적인 하반신 통증을 호소했다. 대부분 탈모·아토피·당뇨합병증 등 스트레스 질환이나 허리디스크 등 노동량의 증가로 인한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들이 연간 병원 치료를 받는 횟수는 사건 전 평균 2.6회에서 범죄가 일어난 뒤 평균 29회로 늘었다.

가족이 죗값을 다 치르고 나와도 깨진 가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4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옛 갱생보호공단) 자료에 따르면 공단 지원 대상 출소자 588명 중 150명은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답했다. 이 중 35명이 ‘출소로 인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원인으로 꼽았다. 사람들의 눈초리에 시달린 가족은 출소자에게 마음의 벽을 쌓았다. 출소 후에도 35명은 ‘가족의 거부’를 이유로 공단의 보호소에서 생활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김혜란 주임은 “가정의 해체는 결국 출소자의 재범이나 자녀의 초범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범죄자 가족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중·장기 재소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14개 주가 ‘수형자 자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수형자 자녀 권리장전’을 채택했다. 공공·민간 기금 마련 활동도 활발하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복권기금(BIG·Big Lottery Fund)에서 출소자 가족을 위해 31만 파운드(약 5억2800만 원)를 지원했다. 싱가포르는 민간 단체인 ‘노란 리본’ 기금에서 2011년 약 9억3500만 원을 모금해 이 중 43%가량을 출소자의 가정 복원 사업에 투자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1년 10월 법무부 등 정부 부처와 관계 당국은 ‘수용자 위기 가족 지원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서울대 재학생과 수감자 자녀 간 멘토링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내년 6월 출소자와 가족의 관계 회복과 심리 치료 및 학업을 지원하는 ‘가족희망복원센터’를 열 예정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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