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스님서 조계종 총림 백양사 방장으로 추대된 지선스님
백양사 경내를 살펴보고 있는 지선 스님. “불교계와 우리 사회 모두 숙제가 많다. 들판 농사가 잘되면 같이 잘돼야지. 어떤 집은 웃고, 다른 집은 우는데 풍년이라고 하나? 진짜 대풍이 들게 힘 있는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올 8월 조계종의 8개 총림(叢林·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 중 하나인 고불총림(백양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67). 스님은 1980, 9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수행보다는 아스팔트에서 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21일 오후 방장 추대 이후 첫 인터뷰를 위해 찾은 전남 장성 백양사의 햇살은 따뜻했다. 경내를 휘휘 둘러보던 스님은 가지가 부러져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는 홍매화를 보더니 “천연기념물인데 이를 어쩌나”라며 혀를 찼다.
“하하, 옛날에 거리에서 15년간 풍찬노숙을 밥 먹듯 했다. 그때 스님이 아니라 산적이나 동학농민군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번 동안거 법어에서 ‘신심과 의심, 분심이 합해진 절박한 정진’을 강조하셨다.
“재야활동 때 내 소원이 선방에서 죽는 거였다. 갖은 죄목이 내 몸에 걸리면서 이러다 수행도 제대로 못하고 죽는 거 아닌가 했다. 기왕 (감옥에) 왔으니 참선하다 죽어야겠다고 앉았는데, 참선이 정말 잘 되더라.”
―절체절명의 무념무상인가.
―요즘 선방 분위기는 어떤가.
“자본주의 사회 분위기 탓인지 수행이 쉽지 않다. 어쩌면 모래를 찧어 밥을 짓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선방을 교도소처럼 만들어 밥만 넣어주고, 깨달으면 점검해 밖으로 내보내고… 이런 생각도 해 봤다. 허허”
―재야 운동가로 더 알려져 있다.
“영웅심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스님들을 유린한 10·27법난이 내 일생을 바꿨다.”
“30번 넘게 조사를 받았다. 나이 지긋한 조사관이 ‘스님은 자생적 공산주의자다’라고 하더라. 난 ‘무슨 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심지어 불교주의자도 아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게 불교다.”
―요즘 시민사회운동을 어떻게 보시나.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담보되지 않는 통일, 통일이 빠져 있는 민주화 모두 허구라고 본다. 선불교뿐 아니라 사회운동도 자신의 몸과 사회에 맞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운동은 수입된 이론과 동원력을 지닌 학생들에게 의존했다. 지도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정치권으로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지난해 이른바 백양사 도박 동영상이 사회적 논란이 됐다.
“그 사람들, 승려 생활을 직업처럼 한 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님을 방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백양사 내부 갈등의 원인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1980년대 난 이미 유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더이상 이름 낼 일이 없는 사람이다. 허허.”
―그래도 방장까지 됐다.
“결국 내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유는 딱 하나다. 중질 50여 년에 머리 깎은 본사가 망해 절딴 나게 생겼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스님은 어릴 때 ‘욕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중학교 2학년 때 광주로 나가 돈벌자며 집을 나섰다가 백양사행 차를 타고 잠깐 구경하려던 것이 출가길이 됐단다. 과거를 돌아보던 스님은 “내일 모레 칠십이지만 난 영원한 사미승(교단에 처음 입문해 사미십계를 받고 수행하는 남자 승려)이다. 번뇌도 하나도 안 없어졌다”고 했다.
―방장인데, 번뇌가 있다고 해도 되는지….
“방장됐다고 뭐가 달라지나. 고민 속에 다리도 못 뻗고 잔다.(웃음)”
―갈등 많은 정치권에 조언을 한다면….
“해원상생(解寃相生·원망을 풀고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란 말이 있다. 해원하면 상생은 절로 따라온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지역적으로 인사 탕평책도 쓰고,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 더 배려해주면 자연스럽게 상생되고 통합된다.”
두 시간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달마상과 글씨가 있는 포장지에 싸인 차를 건넸다. 한사코 사양하자 손수 만든 차에 글까지 쓴 것이라며 ‘시골 아재’처럼 인상을 쓴다.
“산산수수각완연(山山水水各完然) 백일청천막만인(白日靑天莫만人). 산은 산이요 물은 물로 각각 완연해 있는 그대로가 진리인데, 밝은 대낮에 사람 속이는 말 좀 하지 마소. ‘벽암록’에 나오는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글이야.”
장성=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