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하 건축학 교수가 본 최근 개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축가 민현준은 종친부의 배치 형식에 따라 종친부를 중심으로 전시장을 좌우에 놓고 가운데는 마당을 두었다. 그 대신 지하에서는 전시장들이 서로 연결돼 현대적인 미술관 기능을 하도록 설계했다. 박영채 사진작가 제공
이 미술관은 역사적으로나 도시적 맥락에서나 사연이 많은 땅에 지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 종친부 규장각 등이 사용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의전 부속의원이 들어섰고, 광복 후에는 국군수도통합병원과 국군기무사령부가 오랫동안 점유해 왔다. 주변에는 경복궁을 비롯해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이 때문에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이 터는 오랫동안 손쉬운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건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수준 높은 미술관을 설계해낸 건축가의 솜씨를 인정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잘 정돈된 외부에 비해 내부는 아직 어수선해 보인다. 건축가는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이라는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지상에서 보면 주요 전시실은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지만, 지하 1층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는 관람객들에게 전시실을 선택할 권리를 주려는 현대 미술관 설계의 조류를 반영하지만, 정작 주요 전시실을 한 층으로 몰아넣어 관람객들의 동선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전통과 근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건축가는 종친부의 기와, 옛 기무사 건물의 붉은 벽돌과 조화되도록 암키와 모양의 테라코타 패널로 미술관 외벽을 마무리했다. 민현준 건축가 제공
그러나 이 미술관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현대 건축의 새로운 경향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좋은 건축을 판별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바뀌는데, 오늘날 많은 건축가들은 다양한 변화에 적응 가능한 잠재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면서 건축물도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과거 건물은 한 번 세워지면 같은 자리에서 적어도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을 버티고 서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견고함과 장소성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금방 도태되고 만다.
현대 건축에서 시간이라는 변수가 매우 중요해졌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그런 측면에서 잠재력이 큰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미술관에서 완결된 건축 형태는 볼 수 없지만, 그 대신 건축가는 앞으로 진화해 나갈 수 있는 잠재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합의를 통해 그 잠재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