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거기에 더해 새로운 요소로 일본의 상대적인 국력 저하가 있다. 일본 경제의 장기 정체와 정치 혼란, 그것과 반비례하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국제적 지위 향상, 또 중국의 급속한 대두 혹은 대국화 등도 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노무현-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시대부터 진행돼 온 ‘역사와 영토의 일체화’, 옛 위안부 및 징용노동자 문제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개입’, 박근혜 정권 아래 현저해진 한국 외교의 중국 중시, 그리고 일본 국내에 등장한 새로운 혐한 감정 등이 중요한 요소다. 그런 것들로 인해 한일 관계의 회복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번 역사 마찰도 따져보면 일본에서 탄생한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대한 한국 측의 경계심이 앞서간 측면이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역사관’ 발언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아베 총리의 ‘침략의 정의’ 발언 등이 박 대통령의 ‘신뢰’를 손상시킨 점도 부정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중요한 2개 동맹국 간 관계 악화는 분명 미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당초 미국은 한국의 처지에 동정적이었다. 박 대통령의 방미 외교는 분명 성공했다. 그의 미 의회 연설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정부도 역사논쟁이 외교, 안전보장 분야로 확대돼 출구가 보이지 않는 데 대해 점점 더 초조해하고 있다. 제3자로서 중재에 나서면 오히려 사태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라고 판단해 더이상 상대를 자극하지 말라고 양측에 요청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9월 초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한일 양국 방문은 하나의 전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날 이후 미국 정부는 해외 정상과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일본을 비판해 온 박 대통령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가끔 대통령의 ‘고립’이 대통령 권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대일 정책에 대한 비판이 국내외에서 일반화됐을 때야말로 반대와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대일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박 대통령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을까.
문제의 성격을 볼 때 정치지도자 차원에서의 결단 없이는 현상 타개가 어렵다. 내년 2월 박 대통령의 취임 1주년부터 8월 15일 광복절까지가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면 관계 회복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합의가 이뤄지면 2015년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한일 관계는 획기적으로 전진해 그 전략적인 의의를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