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부딪히고 전깃줄에 걸리고 자동차에 받히고…제주 구조센터 방문記
다리골절과 탈진 등으로 사경을 헤매던 멸종위기종 혹고니가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된 뒤 치료와 재활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7일 오전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 교정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 물새계류장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는 멸종위기 1급인 혹고니(천연기념물 제201-3호)가 우아한 날개를 펼쳤다. 하얀 깃털로 뒤덮인 가운데 부리에 검은 혹이 선명했다. 조금 뒤뚱거리기는 했지만 걷고 나는 데 불편이 없어 보였다. 혹고니는 4월 4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탈진한 채 발견됐다. 구조 당시 혹고니는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상태로 곧바로 치료를 받았다. 2, 3개월간 재활훈련을 더 받은 뒤 자연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동물구조 119’로 활약하고 있는 구조센터에는 제주공항에서 산탄총에 맞은 채 발견된 말똥가리가 치료를 받고 있으며 며칠 전 서귀포에서 구조된 솔부엉이는 날개를 붕대로 감싼 채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조류계류장의 독수리, 수리부엉이는 날개가 부러진 뒤 치료를 받았지만 다시 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 야생동물 수난 증가 이들 희귀 및 멸종위기 동물은 대부분 건물과 전깃줄, 자동차 등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 시설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구조건수는 2010년 399마리에서 2011년 567마리, 2012년 587마리로 늘었고 올해 들어 26일까지 543마리에 이르고 있다. 야생 노루는 7월부터 유해동물로 지정된 이후 구조건수가 크게 줄었다. 조류가 78%가량으로 가장 많다. 구조 신고가 들어온 야생동물은 희귀 조류인 큰소쩍새, 말똥가리, 새매, 원앙 등을 비롯해 두루미, 올빼미, 황새, 흰뺨검둥오리, 오소리, 족제비, 고슴도치 등 다양하다.
구조된 야생동물은 어미를 잃은 경우가 24.7%로 가장 많았고 전선 또는 건물 충돌 13.1%, 전선이나 울타리에 얽히는 경우 6.8%, 차량 충돌 6.8%, 기름 노출 4.0% 등 인공 시설로 인한 피해가 많았다. 기아 및 탈진은 8.4%로 나타나는 등 서식지 변화 등으로 먹이를 찾지 못하기도 했다. 구조 동물들을 치료하고 있지만 부상 상태가 심각한 사례가 많아 33%만이 자연으로 돌아갔고 64%가량은 안락사되거나 폐사됐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김완병 연구원은 “야생동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발 과정에서 건축물의 높이, 생태통로 등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 필요 제주지역 야생동물 구조 활동은 일반 동물병원 수의사가 맡아서 하다가 2010년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문을 열면서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24시간 운영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인력이 센터장을 포함해 4명에 불과하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 및 생태 관찰에 대한 초중고교생의 신청이 많지만 관련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포유류의 재활훈련장은 238m²로 비좁아 바닥 오염과 위생 관리에 취약하고 천연기념물 또는 멸종위기종인 독수리, 매 등 맹금류가 머물 때는 다른 새를 함께 넣을 수 없는 형편이다. 맹금류 전용 재활훈련장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재활훈련장이 도로변에 있어 야간 차량과 불빛 등으로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방음, 방풍을 위한 시설도 필요하다.
윤영민 구조센터장(제주대 교수)은 “관광 등을 위해 인공 시설물 건립이 불가피하지만 야생동물이 숨쉴 수 있는 생태공간이 필요하다”며 “자연과 공존하는 대책과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