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취임 당시 선거 제도 개혁을 약속했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도 별 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없다. 현 집행부가 뚜렷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스포츠동아DB
■ 축구협, 지켜지지 않은 공약
24명 표심만 잡으면 회장되는 비정상적 구도
추천서 하나에 인맥 총동원…혼탁선거 폐해
獨 260명 佛 256명…선진국형 확대가 대안
총회 승인 위해 정회장이 대의원들 설득해야
“대의원 제도에 대한 지적이 많다.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
● 왜 바뀌어야 하나
현행 회장 선거방식의 폐해는 심각하다. 축구협회장에 당선되려면 협회 산하 8명의 연맹 단체장과 16명의 시도협회장 등 24명의 대의원 가운데 과반수인 13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다시 말해 후보들은 24명 대의원의 표심만 잡으면 된다. 다수 축구인의 목소리가 회장 선거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구조다.
이러다보니 혼탁 선거가 판을 친다. 회장 후보 등록을 하려면 추천서(정식 후보등록을 하려면 대의원 3명의 추천서가 필요)를 받아야 한다. 1월28일 선거를 앞두고 ‘추천서를 써 주면 몇 억, 뽑아주면 몇 억’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각종 정치권 인맥이 등장하고 ‘자녀의 취업 보장으로 대의원들을 확보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투표 인증샷은 하이라이트였다. 모 후보 측에서 자기를 찍겠다고 약속한 대의원들에게 인증샷을 찍어오라고 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오죽하면 선거를 나흘 앞둔 24일 축구협회 노동조합은 ‘투표용지 촬영을 통한 금품 및 향응 제공 등의 부정행위가 없어야 한다. 카메라, 핸드폰, 볼펜 카메라 등 촬영기기를 이용해 투표용지를 촬영하도록 대의원들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은 간단하다. 대의원 수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 숫자만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대의원을 지방시도협회장을 비롯해 프로구단 대표, 아마추어구단 대표, 초·중·고·대학 지도자, 미디어, 학자 등으로 구성하되 이들이 과연 한국축구 대표자를 뽑을 만한 자격과 인품을 갖췄는지 꼼꼼히 평가해봐야 한다. 구성원들이 자격미달이면 숫자가 아무리 많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유럽 축구선진국 예를 참조할 필요도 있다. 스페인은 대의원 숫자가 182명, 독일은 260명, 프랑스는 256명이다. 이들이 직접투표로 회장을 뽑는다. 프랑스는 1,2,3부 리그 프로구단 대표(3부 리그 중 아마추어로 등록된 팀 제외)와 3부 리그부터 하위리그에 해당하는 아마추어구단 대표, 지역리그 대표 등 이상적으로 대의원이 구성돼 있다. 잉글랜드는 종신직을 포함한 394명의 대의원 중 소수의 부회장단이 선출되고 여기서 호선으로 회장을 뽑는다. 부회장단은 오랫동안 축구발전에 기여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 협회 집행부 의지 있나
정몽규 회장도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 때 “제가 지방 시도협회장이나 산하 연맹회장 그리고 축구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대의원 제도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제도를 바꾸려면 총회 승인이 있어야 하니 대의원들과 상의해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많은 축구인들이 정 회장 발언에 기대를 품었다.
대의원 제도를 바꾸려면 총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총회 구성원들이 바로 대의원들이다. 정 회장부터 나서서 대의원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만큼 정 회장 의지가 강해야만 하나씩 바꿔나갈 수 있다. 말로만 외치는 개혁은 아무 소용이 없다. 보여줘야 믿는다. 그런 점에서 정 회장의 점수는 불합격 수준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