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자 3898명, 범죄 피해자 가족에 3억3667만원 ‘속죄의 기부’
27일 대전교도소 인근 신발 공장에서 무기수 송민수(가명)씨가 작업을 하고 있다. 송 씨는 작업장려금을 모아 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에 다달이 기부하고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송 씨는 1998년 9월 경기 부천시의 한 주점에서 술에 취해 업주의 돈을 빼앗고 흉기를 휘두른 뒤 달아났다. 자신의 칼에 찔려 업주가 숨지고 종업원이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사실은 일주일 뒤 경찰에 붙잡혔을 때 알았다. 사업이 부도 나 합의금이 없었던 송 씨는 자신의 한쪽 눈이라도 피해자에게 기증하고자 했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사형수가 아니면 안구를 기증 받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송 씨가 법정에 남긴 최후 변론은 “죽음으로 죄를 갚고 싶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송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송 씨는 사형을 면하면서 속죄를 결심했다.
지난해 7월 송 씨는 작업장려금 일부를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월 3만 원씩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기부했다. 현재까지 송 씨가 기부한 금액은 51만 원이다. 27일 송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기부금 몇 푼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성금 기부를 하면서 제 범행을 곱씹고 조금이라도 다른 범죄 피해자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건은 박 씨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5년에 발생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한 뒤 박 씨와 남동생(당시 13세)이 ‘어미 없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정성껏 보살폈다. 범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잡혔다. 박 씨는 할머니와 동생을 보살피는 소녀 가장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며 범인이 어서 죽기를 밤마다 기도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지원받은 50만 원으로 끼니만 겨우 이어야 했다. 박 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입시보다 등록금 걱정이 앞섰다. 그때 박 씨에게 장학금을 준 것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였다. 박 씨는 모아 뒀던 돈에 장학금을 보태 2011년 서울 지역의 한 사립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기부에 참여한 수형자 중에는 박 씨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처럼 강도살인범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박 씨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박 씨는 수형자들이 모아 준 장학금 200만 원 덕에 자신이 꿈꿔 왔던 공부를 하게 됐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박 씨는 27일 기자와 만나 “잘못은 지워지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수형자들의 도움이 감사합니다. 불행한 환경 탓에 범죄에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복지학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송 씨처럼 범죄 피해자를 위한 성금에 나선 수형자가 올해 10월 말까지 총 3898명이다. 이들이 모은 3억3667만 원은 전국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지부 58곳을 통해 박 씨와 같은 피해자와 그 유자녀 600여 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김태훈 법무부 교정본부장은 “수형자들이 모금을 통해 피해자의 고통을 한 번씩 더 생각하고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