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방공구역 갈등]동북아 난기류… 정부의 카드는
○ 중국 방공식별구역, 서해로 확대하면 한중 관계 흔들
한국군이 27일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어도 상공 초계비행을 감행한 것은 ‘중국의 장군 공격’에 ‘멍군 방어’의 성격이 짙다. 평소 매주 2회 실시되던 일정에 맞춰, 같은 기종(P-3C) 초계기를 보내 의연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다. 미국은 전략 폭격기(B-52)를 출격시켜 중국의 격한 반발을 샀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는 “한중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 협상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어도를 ADIZ에 포함시킨 것은 중국이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이대로 EEZ 협상을 하면 중국은 ADIZ를 근거로 이어도 수역의 관할권을 주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구나 중국이 서해까지 ADIZ를 확대할 경우 북한을 겨냥한 한미 공군 전력 운용에 상당한 장애가 초래된다.
더구나 방공식별구역이라는 새 변수가 한중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한국의 대북, 동북아정책 구상에 어려움을 안겨 줄 수 있다. 박근혜-시진핑(習近平) 체제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 협조 관계가 유지돼 왔지만 ADIZ 갈등이 증폭되면 이런 구도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 중-일에 “방공식별구역 전면 재조정” 요구해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은 이번 ADIZ 사태의 진원지다. 1971년 미국이 영유권을 일본에 넘길 당시에는 문제 삼지 않던 중국이 국력 상승과 민족주의 확대로 이 섬에 주목하게 됐고 정찰·감시를 강화하더니 ADIZ에 포함시키는 상황에까지 온 것이다. 중-일 양측은 섬을 둘러싼 실력행사 과정에서 익사, 침몰 사고가 잇따랐고 상호 전투기가 대응 출격해오곤 했다. 지금은 물리적 충돌 가능성마저 고조되고 있다.
○ 미중 간 우발사태 벌어지면 한국 입지는 최악
중국군 공군 현역 소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경고를 듣지 않으면 (중국 ADIZ 침범 비행기를) 격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만큼 중국 ADIZ에서 미중 간 우발적인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B-52 전략 폭격기가 또다시 중국 ADIZ를 지나갈 경우 26일(한국 시간)처럼 중국이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중국의 ADIZ에 미군 훈련구역(사격장)이 포함되면서 오키나와 주둔 공군의 훈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며 “우리의 국익을 생각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일미군이 한반도 유사시 증파되는 핵심 전력임을 고려한 발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신중함’보다는 ‘유약함’으로 비친다는 비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이번 사안에 대한 초기 메시지가 명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23일 ADIZ를 발표했지만 24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던 정부는 24일 늦게야 국방부를 통해 ‘유감’이라는 짧은 입장을 내놓았다.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하는 대응행동은 그 다음 날(25일) 이뤄졌다. 또 하루가 지난 26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민항기가 ADIZ를 지날 때 중국에 사전 통보하게 되나’라는 질문에 “확인해 보지 않았다”는 무성의한 답변이 나왔다. 같은 날 외교부는 예정됐던 정례브리핑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중국 ADIZ에 대한 청와대의 명확한 지침이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왔다.
도쿄=박형준 / 베이징=고기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