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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하종대]400년 전, 100년 전, 그리고 지금

입력 | 2013-11-28 03:00:00


하종대 국제부장

중국이 최근 경제굴기(굴起·급부상)에서 군사굴기로 방향을 틀고 미국과 일본이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동북아시아가 요동을 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34년간 중국의 경제력은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커졌다. 1978년 2165억 달러였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7조9917억 달러로 37배로 늘었다. 지난해 말 외환보유액은 3조3116억 달러로 미국의 달러 화폐 발행 총액 3조 달러를 넘어선다. 지난해 수출은 2조 달러로 2위 미국을 5000억 달러 차이로 제쳤다.

따라서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이후 거세지는 중국의 군사굴기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국은 최근 20여 년간 매년 10% 이상 군사비를 늘려왔다. 지난해 국방비는 1060억 달러로 미국 6820억 달러에 이어 2위다. 이웃 국가인 6위 일본의 466억 달러의 2배가 넘는다.

2007년엔 위성 요격에 성공했고 지난해 9월엔 항공모함을 진수시켰으며, 올해 말에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잠대지 핵탄두 미사일을 전력화할 예정이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2003년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렸고 2007년엔 달 탐사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데 이어 2015년엔 화성탐사선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경제·군사력을 두루 갖춘 중국은 부쩍 튼실해진 ‘근육의 힘’을 행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지난해 6월엔 베트남 필리핀 등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싼사(三沙) 시를 설치하고 실질적인 통치권 행사에 나섰다. 지난해 9월부터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싸고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3일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ADIZ) 역시 이런 중국의 군사굴기의 연장선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국의 경제굴기는 우리에게 많은 경제적 기회와 혜택을 제공했지만 군사굴기는 우리에게 심각한 국익의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엔 2003년 우리 정부가 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세운 이어도(離於島) 상공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제주도 서쪽 바다의 2300km²는 우리의 방공식별구역과 겹친다.

특히 중국은 앞으로 황해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추가로 선포할 예정이라고 밝혀 서해에서 한국과 방공식별구역을 놓고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크다.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을 위한 회담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중간선을 기준선으로 삼자는 우리의 주장에 중국은 배후 육지 면적과 인구 등을 감안해 자기들이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요동치는 동북아시아를 보면서 400년 전과 100년 전 역사를 떠올린다. 조선의 16대 왕 인조는 급부상하는 후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2차례의 호란(胡亂)을 겪고 삼전도(三田渡)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모를 당했다. 100년 전엔 급부상하는 일본과 쇠퇴하는 청나라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쇄국정책에 매달린 나머지 나라를 잃는 치욕을 겪었다.

2013년 현재 한국은 과거의 문약한 나라는 분명히 아니다. GDP는 세계 15위에 이르고 군사력 역시 세계 8위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일본의 GDP는 세계의 43%에 이르고 이들의 군사비는 전 세계 군사비의 50%를 넘는다. 우리가 중견국으로 성장했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할 나라는 모두 내로라하는 강대국이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할 때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