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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절반은 김수근을 위해, 남는 반은 현대미술을 위해

입력 | 2013-11-28 03:00:00

공간사옥 인수한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공간사옥이 제 사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곳의 절반은 김수근 선생을 위해, 나머지 절반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현대미술을 위해 사용할 겁니다.”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설계한 공간사옥의 새 주인이 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사진). 충남 천안과 서울에서 아라리오갤러리를 운영하며 3700점의 미술품을 보유한 ‘미술계의 큰 손’에게 공간사옥은 가장 의미 있는 컬렉션이 될 듯하다.

27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옥 3층 ‘김수근 작업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돈으로 따지면 이보다 비싼 작품도 많이 사봤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며 공간사옥을 미술관으로 새 단장해 내년 9월 개관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수근이 설계한 검정 벽돌의 구사옥은 원형 그대로 활용하고, 공간그룹의 2대 대표인 고 장세양이 유리로 지은 신사옥은 도서관 레스토랑 기념품가게로 쓸 예정이다. 이상림 현 대표가 증개축한 한옥은 허물고 대신 미술관의 입구와 로비를 신축할 계획이다. 이 작업은 이상림 대표가 맡는다.

“‘아라리오’가 들어간 미술관 이름은 입구에 조그맣게 달 거예요. 구사옥 위쪽에 흰색 한자와 영문으로 된 ‘공간’ 문패는 안 떼고 그대로 갑니다. 오늘 김수근 선생 부인과 점심을 먹으며 이 말씀을 드렸더니 좋아하시더군요.”

김 회장에게 공간사옥 매입은 ‘충동구매’였다. 그동안 공간사옥의 새 주인으로 거론돼온 이름은 현대중공업과 네이버였다. 충남 천안에서 종합터미널 백화점 멀티플렉스 등을 경영하는 중견기업인 아라리오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21일 사옥 공매가 유찰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한국 현대건축의 상징이 매물로 나오고, 거기다 유찰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그때부터 ‘나라도 나서볼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주말 내내 고민한 끝에 김 회장은 제주 작업실에서 상경해 25일 오후 2시 이상림 대표를 만났다. “공매 최저가인 150억 원에 살 테니 은행 영업마감 전까지 결정해 달라고 했어요. 그때까지 결정 못하면 이 사옥은 제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내려가겠다고요. 결국 3시 반에 합의를 보고 계약금 10%를 바로 입금했습니다.”

건축가 김수근은 1977년 공간사옥을 완공하면서 “이 터는 하도 (기가) 세서 나 아니면 지키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김 회장에게 이 말을 전했다.

“이 건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미술품을 3700번 사면서 그만큼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주말에 이 미술관 앞으로 죽 줄서게 할 자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현대 미술작품은 물론이고 건축가의 꿈을 그리는 젊은이들이 나오게 할 겁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