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감독 깜짝 경질 등 구단 운영 입김 점점 커져두산 김태룡-SK 민경삼 단장… 선수출신이라 장악력 뛰어나넥센 이장석 대표도 적극 개입… “결과 나쁘면 언제든 책임질 것”
미국 영화 ‘머니볼’에서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조명이 꺼진 경기장에 혼자 앉아 라디오로 자기 팀 경기 중계를 듣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머니볼은 2002년 오클랜드의 20연승을 이끈 빌리 빈 단장의 성공 신화를 다룬 작품이다. 빈 단장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던 출루율에 주목해 2001년 102승(승률 0.630), 2002년 103승(0.636)을 이루게 한 인물이다. 그는 지금도 오클랜드 단장이다. 소니픽쳐스 제공
불호령 같은 한마디였다. 그는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 시작된 달리기는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계속됐다.
김응용 감독(현 한화 감독)이 해태 감독이던 1980년대 후반 어느 날이었다. 연습 전 한 프런트(지원팀) 직원이 장난 삼아 선수용 배트를 꺼내 공을 쳐 본 게 발단이었다. 마침 운동장에 나오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 감독은 그 직원을 오후 내내 뺑뺑이 돌렸다. 그 시절 김 감독은 절대 권력자였다.
○ 지금은 프런트의 시대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최근 들어 감독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계약 기간과 관계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 못하면 잘리는 게 기본이다. 성적이 나쁘면 좋은 성적을 내라고 하고, 좋은 성적을 내면 더 재미있는 야구를 하라고 한다.
2011년 10월 1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취임 기자 회견을 마친 김진욱 전 감독(왼쪽)과 김태룡 단장이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두산 프런트가 내세운 메시지는 명확했다. “잘나갈 때일수록 팀의 리빌딩이 필요하다. 두산이 계속 강팀으로 남아 있으려면 선제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김 감독으로는 내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힘들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두산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종욱과 손시헌(이상 NC), 최준석(롯데)을 모두 잡지 못했다. 2차 드래프트에서는 임재철과 이혜천을 각각 LG와 NC에 빼앗겼고, 거포 유망주인 윤석민은 넥센으로 트레이드했다. 모든 게 프런트의 결정이었다.
○ “가슴에 사표를 넣고 산다”
이전에도 프런트 야구를 표방한 몇몇 구단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모기업에서 구단 고위직으로 내려왔지만 기업 경영 방식을 야구단에 그대로 적용하려다 간섭으로 받아들인 감독과 갈등을 빚기 일쑤였다.
두산뿐 아니라 여러 팀에서 프런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선수 수급을 비롯한 선수단 구성, 코치 영입과 같은 육성 분야는 프런트가 맡고, 감독은 주어진 선수단을 활용해 이기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된다. SK의 민경삼 단장 역시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프런트 야구를 지향하고 있고, 넥센 이장석 대표는 선수 스카우트에도 직접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 대표가 주도한 선수 트레이드와 외국인 선수 영입은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야구에 대한 경험을 쌓은 프런트들이 늘어나면서 프런트 야구는 점점 대세가 되고 있다. 김성근 전 SK 감독(현 고양 원더스 감독)과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 ‘감독 야구’를 했던 마지막 세대가 되고 있다.
주요 선수를 모두 놓친 데 이어 감독까지 경질한 두산 프런트는 요즘 팬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가는 길이 옳다고 확신한다. 김승영 사장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 당장 내년에 좋은 성적이 나지 않더라도 3∼4년 후에는 지금 뿌린 씨앗들이 훌륭한 성과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