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 갈등… 동북아 패권 격돌]<上>62년만에 분쟁의 핵으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설정에 따른 한중, 중-일, 미중 갈등 양상과 동북아 정세 불안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부터 우려해온 ‘동북아 패러독스’의 생생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경제 사회 문화 교류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역사 및 영토분쟁 등 외교 안보 갈등이 촉발되면 지역 전체가 긴장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무역국, 일본은 제2무역국이다.
○ ADIZ 대립으로 분출한 해상통제권 갈등
“바다의 갈등이 공중으로 분출됐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국력을 군사력으로 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경제대국’에서 ‘군사대국’으로의 변모를 가속화해 왔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이 해군 창설 60주년 연설에서 “근해해군에서 벗어나 대양해군으로 거듭나자”고 공식 선언했다. 매년 2척 이상의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중국은 2012년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까지 갖게 됐다. 2015년까지 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島鍊線·island chain)’, 2020년까지 괌∼사이판을 연결하는 ‘제2도련선’의 해상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이에 따라 △영해기선 선포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閣 열도) 영해 순찰 상설화 △ADIZ 선포 등 대외 조치의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 미일은 대중(對中) 봉쇄전략 추구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2011년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공식 외교라인으로 채택했다. 2020년까지 현재 대서양과 50 대 50으로 양분된 태평양 미군 전력을 6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도 정했다.
미국은 호주 주둔 미군을 현재 250명에서 1100명으로 크게 늘리고 호주 해군은 주일미군 항모전단의 일부로 작전토록 했다. 또 △미군의 필리핀 재주둔 추진 △말레이시아 사상 첫 항모전단 기항 △인도네시아 미얀마와의 군사협력 강화 △태국과 첫 공동비전 성명 등의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내년에는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미-아세안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다. 아시아 지역 군사훈련 강화를 위해 1억 달러(약 1060억 원) 예산도 추가로 배정했다. 사실상의 중국 봉쇄정책인 셈이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6월 아시아 지역 대비태세 재조정에서 미일 군사 유대의 ‘본질적 진전’을 언급했고 이후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도 △센카쿠 국유화 △자위권 확보 위한 헌법 재해석 △주일미군의 인력 및 장비 보강 협조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미중일의 태평양 제해권 경쟁에서 비켜서 있었다. 한때 ‘바다로 세계로’라는 구호로 대양해군을 표방했던 한국 해군은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연안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무슨 대양해군이냐’며 움츠러들었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방어에도 허점을 드러내왔다. 이어도가 KADIZ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 마라도와 홍도 인근 영공이 일본 ADIZ와 겹친다는 원초적 문제의 미해결 상태가 계속돼 왔다. 올해 러시아가 KADIZ를 침범한 사례만 18건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침범은 무려 64차례. 사실상 KADIZ 무력화 시도인 셈이다. 올해 중국도 3차례, 일본은 1차례 KADIZ를 침범했다. 한국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중국의 ADIZ 설정으로 한국의 외교가 테스트 받게 됐다”며 “한미동맹, 한중관계 모두 중요한 한국이 미중 양국으로부터 ‘누구 편이냐’의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김철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