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 갈등… 동북아 패권 격돌]<上>62년만에 분쟁의 핵으로국방전략대화 ‘방공구역’ 팽팽
28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국방차관급 전략대화에서는 ‘원론적인 말만 오고가지 않겠느냐’는 군 일각의 예상과 달리 한국과 중국 양국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예정된 시간을 한 시간 이상 훌쩍 넘길 만큼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신경전을 벌였고 이로 인해 회담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는 후문이다.
한국 측은 중국의 일방적인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에 ‘매우 유감’, ‘인정할 수 없다’, ‘우리의 관할권은 영향 받지 않는다’는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정부 안팎에선 2004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한중 간 현안으로 부상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강한 유감을 발표한 이후 가장 강도가 높은 대중(對中) 유감 표명이란 얘기가 나왔다.
당초 중국은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무관하게 예정된 회담이었고 양국 간의 국방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방공식별구역 문제가 의제가 되는 것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측의 강한 요구로 긴급의제로 상정됐지만 왕관중(王冠中)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처음부터 ‘수용 불가’를 밝히며 시종일관 방공식별구역 선포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왕 부총참모장에게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바꿀 만한 전권이 없었다”며 “중국 정부의 견해를 한국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까지 포함해 확장하는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국방부는 “KADIZ 조정 문제는 우리의 국익, 국제적 관행, 관련국의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중국의 태도가 한국의 국익 보호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이제 KADIZ 확장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는 신속히 KADIZ 확장안을 검토해 조만간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군은 KADIZ 확장 문제와는 별개로 그동안 실시해온 매주 2회의 이어도 상공 초계비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양국이 서로 할 말만 하고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회담이 끝남에 따라 한중 양국 관계는 당분간 냉각기를 갖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중 양국 간의 협의 채널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도 또 다른 갈등 요인이다. 현재 중국은 서해상에서도 추가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화 채널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국이 서로의 입장만 쏟아내는 강대강(强對强) 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