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 받고 휴대전화 명의 빌려줬다가…
‘그때는 몰랐다. 휴대전화를 개통한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이름을 빌려준 게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27일 낮 12시 15분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 이 집에 사는 A 씨(58)가 화장실에서 노끈으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A 씨의 부인(56)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 씨는 뇌경색 3급인 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그는 앞선 25일에도 집에서 자살을 시도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휴대전화’ 때문이었다. 그는 2012년 6월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남성으로부터 “휴대전화를 개통하는데 명의를 빌려주면 1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기초수급자로 궁핍한 생활을 하던 A 씨는 의심 없이 자신의 인적사항 등을 알려줬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A 씨는 2012년 6∼8월 자신의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 3∼5대가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죄에 악용됐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휴대전화는 3개월 요금이 연체돼 정지된 상태였다. 이 기간에 사용된 전화요금이 2000만 원에 이른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A 씨는 범인으로 오인돼 같은 해 8∼10월 모두 4차례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 조사였지만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A 씨의 한 친척은 “A 씨가 휴대전화 명의를 대여해 줘도 되느냐고 하기에 ‘절대 안 된다’고 당부했는데 이미 명의를 빌려준 뒤였던 것 같다”며 “명의를 빌려주면 준다던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 씨 유족들은 28일 본보 기자를 만나 “A 씨가 정이 많아 휴대전화 명의를 빌려 달라는 요구를 차마 거절하지 못한 것 같다. 불쌍한 사람”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29일 A 씨의 장례가 끝난 뒤 대포폰을 사용한 이들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