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붉은 울음/김성리 지음/292쪽·1만4000원/알렙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인생을 몇 줄로 요약하기란 어렵다. 그는 1927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녀를 다녔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했다. 오빠와 두 언니는 광복 전 일본으로 이주했다.
부산고녀 재학 시절 한센병과 임신이란 불행이 한꺼번에 닥쳤다.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불러오는 배를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곧 한센병이 몸을 덮쳤다. 동네 주민들은 산기슭 움막으로 내몰았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돌봐주던 어머니가 이듬해 숨지고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입양 보내야 했다.
간호사 출신인 저자는 문학과 의학을 융합한 ‘치유 시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2006년 7월 ‘시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고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2007년 2월까지 20여 차례 저자를 만나 시를 쓰며 자신의 억누르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아름다운 영혼과 화해한다. 책에는 2009년 6월 사망한 할머니의 구술사와 시 11편이 수록돼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