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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번엔 밀양으로… 갈등 키우는 게 종교가 할 일인가

입력 | 2013-11-30 03:00:00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일부 신부들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미사 파문 이후 조계종 승려와 개신교 목사들도 잇따라 시국선언을 했다. 조계종에서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주도로 대통령의 대(對)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앞으로 사퇴까지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신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가 주도해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조계종 실천불교승가회, 개신교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는 이른바 야권 원탁회의의 일원으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 연대 성사에 앞장섰고 지난 대선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종교 조직이다. 이들의 시국선언이 천주교 조계종 개신교 전체의 의사 표시가 아니라는 것쯤은 국민들도 모르진 않는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고, 종교인들도 그에 대해 의견 표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 말고는 누구도 못하니까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태도로, 그것도 반대나 비판 일변도로 릴레이 하듯 시국선언을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종교 본연의 소명보다는 세속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성직자들은 그동안 정치 외에도 광우병 사태, 4대강 문제,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진영 논리가 개입된 온갖 문제에 참견해왔다. 성직자들이 나서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잘못이 있으면 시정해 나갈 능력을 갖고 있다. 주민과 전문가들이 논의하면 될 일에 ‘생명사랑’이니 ‘생명평화’니 하는 애매모호한 구호를 앞세워 성직자가 끼어들면 타협은 요원해진다.

이번 주말에는 송전탑 건설 반대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른바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몰려갈 예정이다. 이를 주도하는 사람은 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 신부다. 제주해군기지는 어렵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공사장 앞에서는 매일 천주교 신부와 수녀가 주도하는 생명평화미사라는 것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가적 쟁점 사업마다 종교인이 나서 제동을 거는 나라도 드물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종교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가. 종교는 세속의 일은 세속에 맡겨두고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