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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 내 글을 퇴짜? 그럼 개인출판으로 내지!

입력 | 2013-12-02 03:00:00


주문출판(POD) 방식으로 제작된 책들. 프린트 기술의 발달로 일반 독자가 POD와 기존의 조판인쇄 방식으로 만든 책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교보문고 제공

산부인과 의사인 현직의(필명·37·여)는 2011년 봄 의사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닥터스 로맨스’를 썼다. 만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원고를 들고 종이책, 전자책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이야기가 너무 방대하다” “소설 작법이 아니다”라며 거절당했다.

그는 ‘개인출판’으로 활로를 뚫었다. 2011년 가을 전자책 오픈마켓인 유페이퍼에서 ‘닥터스 로맨스’를 판매했다. 이후 ‘펜트하우스’ ‘유리파편 위의 사랑’을 속속 발표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 독자층이 확보되자 종이책도 냈다.

그는 “외과의사인 남편의 조언과 의학서적을 참고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랑 이야기를 성의학으로 풀어내 독자에게 의학 정보를 함께 준 것도 경쟁력이 됐다”고 자평했다.

기존 출판사의 높은 문턱을 피해 개인출판으로 독자를 공략하는 작가가 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듯 전자책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자책을 만들어 오픈마켓에 올린다. 독자의 주문을 받아 책을 찍어내는 주문출판(POD·Publish On Demand) 방식으로 종이책도 내고 있다. 전통적인 조판인쇄 방식이 아닌 프린트 인쇄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POD는 재고 걱정이 없다.

유페이퍼의 경우 작가 1800명이 전자책 8000종을 올리고, 이는 인터넷서점과 이동통신망에서 유통된다. 교보문고 POD 서비스의 판매량도 지난해 7000부에서 올 10월 현재 1만2000부로 늘었다.

이들은 직업이나 취미를 살려 세분된 주제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마니아인 손갑철 씨(53·무역업)는 지난해 ‘FSX로 파일럿 되기’를 썼다. 1994년 ‘컴퓨터 파일럿’(크라운출판사)을 출간했던 손 씨는 이후 20년간 바뀐 비행 시뮬레이션 기술을 반영한 이 책의 출판을 의뢰했다. 하지만 출판사들은 불황이라 초판 1000부도 팔기 어렵다며 퇴짜를 놨다. 손 씨는 지난해 POD로 2만2400원에 책을 내놓았고, 지금까지 500권 이상 팔렸다. 그는 “비행 시뮬레이션 분야에선 유일한 필자라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그때 책을 찍어내기에 망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한국계 미국작가 수전 이의 판타지소설 ‘엔젤폴’(제우미디어)도 개인출판 전자책으로 성공을 거둬 19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에서도 개인출판 시장이 커지면 새롭고 다양한 필자를 발굴하는 마이너리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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