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일 일요일 맑음. 보이스, 비 보이스.#85 Public Enemy ‘Fight the Power’ (1989년)
제10회 레드불 비씨 원에서 우승한 한국의 홍텐(왼쪽)이 결승 무대에서 프랑스의 무니르를 압도하고 있다. 레드불 제공
오후 7시, 본 대회 시작. “엘 니뇨!” “스톰!” 사회자의 격앙된 목소리로 호명된 심사위원들부터 한 명씩 무대에 올라 예명에 어울리는 격렬한 비보잉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심사위원들도 전현직 비보이인 거다. 지름 8m의 원형 무대는 그를 에워싼 3500명 관객의 환호에 프라이팬처럼 예열됐다.
10회를 기념해 주최 측은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 지난 대회 우승자를 모두 소환했다. 8명의 역대 우승자는 53개국 2000여 명이 참가한 세계 예선을 통과한 8명의 새 도전자들과 섞여 토너먼트를 거쳐야 ‘왕 중 왕’이 될 수 있었다. 영화 ‘헝거게임: 캣칭파이어’ 같은 상황이다.
건들대며 서로 손짓으로 희롱하거나 독려하다 갑자기 폭발적인 도약과 춤을 터뜨리는 순간엔 객석 여기저기서도 묻어 놓은 지뢰가 폭발하듯 100dB의 환호가 터져 올랐다. 팔다리를 무서운 속도로 비틀고 손이나 머리를 축으로 빙글빙글 돌다 멋진 자세로 멈추는 화려한 동작은 불꽃놀이 같았다.
DJ가 즉석에서 만드는 배경음악도 거들었다. 트램펄린처럼 선동적인 킥(둔중한 베이스 드럼)과 채찍같이 날카로운 스네어(고음의 작은북) 소리가 분당 박자 수 115∼130으로 몰아치며 혼을 쏙 뺐다.
음악인지 체육인지 무용인지 전쟁인지 모를 150분의 시간은 결국 내게 단 한 가지 생각만 남겨 놨다. ‘다시 태어나면 비보이 될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미모의 여기자가 ‘홍텐(우승을 차지한 한국인) 사랑’을 내게 고백해서는 아니다. 관객, 참가자, 심사위원까지…. 몸은 큰데 아기 고양이의 맘을 간직한 춤꾼들이 부러워져서다. 비보이가 ‘보이’라서일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