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 갈등… 동북아 패권 격돌]<下> 韓 새우등 안되려면…
한국은 이번 ADIZ 사태를 통해 언제든지 강대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는 지정학적 취약성을 노출했다. 반면 중-일이 서로 한국에 구애 공세를 펼친 데서 보듯 전략의 묘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한국)는 고슴도치가 돼야 한다. 중-일 모두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장기 전략 없는 ‘일방적 편들기 외교’는 위험
중국이 미일을 상대로 먼저 태도를 바꿀 개연성도 있다. 2010년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당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통해 “남중국해가 중국의 핵심적 이익”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맞받으며 베트남과 연합 군사훈련에 이어 핵 협력 의지까지 보이자 놀란 중국이 먼저 물러섰다.
○ 중간자의 전략적 가치를 중재자의 역할로 활용을
한국이 미중일처럼 상대국에 물리적 위협을 통해 의견을 관철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일 3국 갈등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이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전략적 가치도 높아진다”며 “한국의 이런 위치를 지렛대(레버리지)로 잘 활용하면 우리가 힘이 없다고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 한국은 품어야 할 동맹이고 일본도 한미일 공조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중국도 한국을 대립 관계인 미일의 편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는 전략적 이해가 있다.
한국은 이런 중간자의 위치를 사태 해결의 중재자 역할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특히 ADIZ와 관련해 가장 할 말 많은 국가가 한국인 만큼 미중일 3국을 상대로 ‘ADIZ를 재설정하자’고 적극 주문할 수도 있다. 3국과 달리 한국의 ADIZ는 외국군(미군)이 6·25전쟁의 혼란 속에 설정한 것이고 마라도와 홍도 인근은 명백한 한국 영공임에도 다른 나라 ADIZ의 침범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중-일과 싸울 의도가 없으며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방적인 ADIZ 선포가 유엔해양법 협약과 충돌할 수 있고 ‘ADIZ를 침범하면 민간 항공기에까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중국의 위협도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법상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비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민항기 문제부터 푸는 것도 방법”이라며 단계적 해법 마련을 주문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김철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