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6>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 라면 피자 당구장 금지
기자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는데 바로 5분 후 방문을 여는 온화한 얼굴의 신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팀에 ‘10분 전 문화’가 있어요. 출발 시간에 1초라도 늦는 선수는 그냥 두고 떠납니다. 국제대회에 갔을 때 임원 한 분이 쇼핑 갔다가 늦기에 선수단 버스를 그냥 출발시킨 일도 있어요.”
삼성화재에는 깐깐한 규칙이 많다. 라면과 탄산음료 불가, 오후 9시 이후 금식, 야간 휴대전화 사용 금지…. 선수들은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야 한다. 과체중은 부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선수들 숙소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컵라면 같은 간식 먹은 흔적이 나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피자와 치킨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감독 허락 후 먹을 수 있다.
선수들은 또 당구장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 배구선수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어깨를 다칠 수 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는 프로팀이 아니라 ‘유치원’ 같다고 놀리는 말까지 있다. 하지만 신 감독의 소신은 변함이 없다. “이기려면 훈련을 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생활이 중요하다. 바른 생활태도는 생각과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팀워크는 술 먹고 놀러 다닐 때 나오는 게 아니라 춥고 배고프고 힘들 때 나오는 게 진짜다.”
○ 권불십년은 없다
신 감독은 ‘달리기 훈련 지상주의자’이기도 하다. 400m 트랙을 30바퀴 도는 건 기본. “달리기가 지구력과 밸런스 향상에 좋기도 하지만 혼자 뛰면서 왜 내가 기술을 습득하고 왜 이런 플레이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초창기 스타 군단을 구비한 삼성화재는 선수들의 개인기만 갖고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물갈이 후 신 감독의 지도철학은 확 달라졌다. 삼성화재는 드래프트를 통한 우수 신인 영입이 불가능해지면서 외국인 선수로 전력을 극대화했다. 안젤코와 가빈, 레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들은 저비용 고효율의 대명사다. 다른 팀들이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거물에 매달리는 동안 신 감독은 10만∼20만 달러의 몸값에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에 집중했다.
“우리 외국인 선수가 성공하는 이유는 국내 선수의 희생과 배려 덕분이다. 강한 선수는 더 강하게 써야 이긴다. 철저하게 외국인 선수 위주의 플레이로 성공률을 높이는 거다.”
○ 제자, 가족 그리고 나
삼성화재는 지도자사관학교라 불린다. 남녀 프로배구 13개팀 중 10개팀 지도자가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 감독이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다. ‘겸손’과 ‘언어 선택’이다. “스타 출신일수록 자신을 낮추라고 합니다. 또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왜 이런 것도 못하느냐’ ‘내가 하면 더 잘할 거다’라는 식의 말은 상처와 반감만 주죠. 눈높이를 선수에 맞춰야 합니다.”
체육계는 최근 두산 김진욱 감독이 돌연 경질되면서 프런트 역할이 논란에 휩싸였다. 신 감독은 “감독을 을(乙)로 생각하는 단장은 구단주가 알아서 잘라주어야 한다. 감독과 단장은 협력하고 존중하는 관계여야 한다. 삼성화재는 현장은 감독, 지원은 단장의 원칙이 줄곧 지켜졌다. 좋은 프런트를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했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신 감독. 1983년 한국전력 코치로 시작한 지도자의 길도 30년을 넘어섰다. 그와 삼성화재의 오랜 동행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내가 삼성화재에 있는 동안 다른 팀에서는 31명의 감독이 바뀌었다. 20년 동안 열심히 하고 성적이 좋아도 작은 사고라도 터지면 관두는 건데, 자부심을 느낀다. 삼성을 떠나 감독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어제는 추억이다. 다시 준비하자’는 좌우명을 지녔다는 신 감독. 성공을 잊고 매번 다시 도전하는 그의 철저함이야말로 강산이 두 번 변해도 직함이 변하지 않는 이유이리라.
김종석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