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3년 뒤 도둑이 들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는 곧 이사를 결정했다. 그 뒤로 죽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딱 한 번 그 집 앞을 다시 찾았다. 20년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 그럭저럭 그대로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고마워서 담장 아래 쪼그려 앉아 한동안 멍하니 철문을 바라봤다.
며칠 전 저녁나절 삼청동에서 통의동 쪽으로 걷다가 그 철문 생각이 났다. 휘황한 백색 조명 뒤 우뚝 선 광화문이 뽀얗게 멀끔했다. 갖은 곡절 겪어내며 불타고 부서지고 기우뚱 밀려났던 대궐문을 원래 위치에 번듯이 다시 세운 건 분명 좋은 뜻이었을 거다. 하지만 배움 부족한 탓에 휘영청 밝은 조명 곁을 서둘러 지나며 든 생각은 그저 짤막했다.
새거네.
화재 복구 공사를 마치고 야단법석 공개되기 얼마 전 택시를 타고 숭례문 앞을 지나다 알록달록 단청을 올려다보며 했던 생각, 피맛골을 싹 밀어내고 네모 반듯 올려 세운 주상복합 건물을 처음 어리둥절 건너다보며 들었던 생각, 연애에 실패할 때마다 차 몰고 혼자 달려갔던 강원도 백사장을 두부 모판처럼 마름질해 놓은 시멘트 포장 위에 서서 머금은 생각…. 똑같았다.
새거구나.
아궁이를 치우면 세월마다 눌러뒀던 음식 맛이 날아간다. 고풍을 흉내 내 옛길 흔적 표지를 달아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물론 옛 맛이 반드시 나을 리는 없다. 어쨌든 분명, 다른 맛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니 또 온 도시가 공사판이다. 큰 불편 없이 걸어 다니던 인도 블록이 해체되고 별 탈 없던 도로 포장이 벗겨진다. 헌것을 무심히 새것으로 당연한 듯 바꾼다. 왜 바꾸는지, 옛것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새것을 만든 작업의 흔적만 확 도드라진다. 옛것을 애써 지켜봤자 드러났을 리 없는 흔적이다.
어디에도 좀처럼 시간이 쌓이지 않는다. 옛집 골목은 아마, 다시 찾을 일 없을 거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