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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이 뭐예요?” “‘여자라 못한다’는 말 부모님이 더 싫어해요”

입력 | 2013-12-03 03:00:00

[新 여성시대]4부 성평등 인식<1>초등학생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요즘 초등학생들의 성평등 인식은 어떨까.

동아일보는 최근 서울 도봉구, 중구, 서초구, 송파구의 초등학교 1곳씩을 선정해 초등학생 성평등 인식을 조사했다. 4학년 111명, 5학년 137명, 6학년 126명 등 총 374명이 응답했다. 또 서울 시내 10개 초등학교를 무작위로 선택해 총 10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요즘 초등생들은 가정과 학교 내에서 남녀차별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차별을 경험한 비율도 14%에 불과했다.

이들은 ‘남자(또는 여자) 직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절대 다수인 93.9%(351명)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장래희망을 정할 때 자신의 성별 때문에 힘들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94.1%(352명)가 ‘없다’고 답했다. 또 응답 학생들의 87.7%(328명)는 ‘어른이 되어서도 남자(또는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성차별이나 성별로 인한 한계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요즘 초등학생들은 기성세대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15.8%) ‘통솔하고 명령하는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10.7%)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15.2%) ‘꼼꼼한 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22.0%)는 항목에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인식은 ‘리더십’과 관련된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여학생이 학급 회장이 되었을 때 더 일을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7.8%(216명)가 동의했다. 또 ‘전교 어린이 회장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잘할 것 같은가’라고 물은 대목에서는 ‘아니요’(276명)’가 ‘그렇다’(95명)보다 압도적으로 앞섰다.

이들의 출생연도는 2001∼2003년. 이들이 알고 있는 대통령은 남자 대통령 1명, 여자 대통령 1명이다. 이번에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주관식 항목에서도 ‘신기하다’ ‘여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라는 답변과 ‘남녀 모두 대통령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지 남녀 기준으로 대통령이 어떤지 나눌 필요는 없다’는 답이 팽팽했다. 장래 희망 1순위를 ‘대통령’으로 쓴 응답자 2명은 모두 여학생이었다.

○ 깨인 부모 깨인 딸들

학생들에 대한 설문을 마치고 이번에는 교사들을 만났다. 초등생들의 변화를 가장 잘 알 것 같아서 경력이 오래된 교사들을 주로 만났다. 이들은 입을 모아 “가정 내에서 부모들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10년 전인 199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아이들보다 2000년 이후 입학한 아이들의 성평등 인식이 특히 더 강한데 이는 부모들의 영향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조사 대상 아이들의 부모는 한국이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1970년생 이후가 주를 이룬다. 이 세대는 ‘남녀 차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시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장남이나 아들들만 대학을 보내고, 딸들은 굳이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는 베이비 부머와는 확연히 다른 세대였다. 남자들과 똑같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진학률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가정 내 중요한 일은 누가 결정하는가’에 대해 ‘엄마 아빠가 함께 결정한다’(81%)가 압도적인 1위였다. 이어 ‘아빠’(7.75%) ‘엄마’(6.42%) 순이었다. 이렇게 부모가 서로 상의해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아버지도 가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이들에게는 ‘남자일’ ‘여자일’이라는 편견이 생길 틈이 적었던 셈이다.

또 ‘부모로부터 아들 혹은 딸이라서 차별받은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도 절대다수인 80.8%(302명)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딸이니까, 아들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에 ‘그렇다’고 답한 학생도 19%(71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학교 축구부에서 공격수를 맡고 있다는 6학년 A 양은 “부모님은 내가 축구부에 참여하는 걸 자랑스러워하신다. 오히려 주변에서 여자애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더 화를 내신다. 여자라고 얌전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 학교에 남아있던 ‘성차별’이 없어졌다

가정교육만큼 아이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 곳이 있다. 바로 학교였다. 맨 처음 세상을 접하는 장소인 학교는 지난 5년간 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먼저 반장 시스템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선거나 교사의 지명으로 반장을 한 명만 뽑았다. 이런 과정에서 투표를 통해 여자가 반장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여자가 공식처럼 남아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반장 체제가 달라졌다. 취재팀의 조사 결과 학교장 재량으로 반장 2명, 부반장 2명을 두는 경우가 대폭 늘었다. 반장 2명도 남녀 각각 1명씩, 부반장 2명도 남녀 각각 1명씩 둔다.

이 제도는 본래 양성평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한 것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여학생들이 지휘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에게는 성평등 인식이 자연스럽게 싹트게 됐다.

다만 남자 반장과 여자 반장의 리더십의 내용에는 차이가 있었다. 심층 인터뷰에 응한 초등학생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여학생 반장이 선생님이 나눠주라고 하는 유인물을 잘 나눠주고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 같다” “남자 반장은 주로 시끄러운 아이들에게 강하게 주의를 주거나 기자재를 옮길 때 더 잘하는 것 같다”는 답이 많았다.

한편 요즘 초등학교의 출석부도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 학교 상당수가 남학생 이름을 먼저 가나다순으로 나열하고 뒤에 여학생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했다. 그러나 요즘은 남녀를 섞어서 가나다순으로 배치하는 학교가 5, 6년 새 대폭 늘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에서 초등학교 출석번호를 남녀 가리지 않고 가나다순으로 할 것을 권고하면서 변화는 더 가파르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출석번호는 아이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남자를 먼저 불렀을 때는 급식이나 체육활동 때 항상 남자가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여자가 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무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교과서 삽화도 달라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 국어, 사회 교과서를 주축으로 교과서 속 성차별적인 요소를 의식적으로 빼기 시작한 것. 예를 들어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는 항상 남자가, 간호사나 돌봄 노동은 항상 여자가 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개정된 교과서에서는 여자 과학자, 여자 최고경영자(CEO), 남자 간호사 등 성별을 나누지 않는 삽화들이 대폭 늘어났다.

아예 2009년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양성평등’ 교육을 교과 교육과정에 필수요소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학생들은 성평등과 연관된 단어에서 개념을 배우고, 체험활동을 통해 관련 내용을 배우고 있다.

○ 남학생 장래희망 바뀌었다

아이들이 꿈꾸는 자신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 진로교육이 강화되고 인터넷 등으로 여러 직업을 많이 접하면서 희망직업군 자체가 매우 다양해졌다.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바리스타, 자동차레이서, 네일아티스트, 영화감독, 과학수사반장, 음악치료사, 액세서리 디자이너, 동물 매개치료사, 종이공예작가, 플로리스트, 동시통역사, 게임프로그래머 등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설문조사 결과 가장 선호한 직업은 △운동선수(48명) △요리사 제빵사(45명) △의사(37명) △과학자 발명가(30명) △교사(24명) 순이었다. 하지만 남녀별로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남학생의 경우 △운동선수(40명) △과학자 발명가(28명) △요리사 제빵사((12명) △경찰(10명) △법조인(6명) △교사(5명) △건축가(4명) △기타(34명) 순이었지만 여학생은 △요리사 제빵사(33명) △교사(19명) △의사(18명) △의상 헤어 디자이너(15명) △음악가(10명) △운동선수(8명) △연예인(6명) △기타(44명) 순이었다. 남학생들이 경찰, 법률, 이공계 분야에 관심이 많은 반면에 여학생들은 이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오히려 변화의 바람은 남학생들에게 불고 있었다. 진로 지도 교사들은 “여학생들의 선호 분야는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남학생들은 디자이너, 파티플래너, 파티시에(케이크 과자 전문가), 심리상담사 등을 선호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isityou@donga.com     
오혜진 인턴기자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4학년      
권소영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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