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황선홍 감독이 말하는 ‘기적의 우승’ 순간
황선홍 포항 감독이 1일 울산을 1-0으로 꺾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뒤 우승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다. 울산=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기적 같은 K리그 클래식 역전 우승을 차지한 포항 황선홍 감독(45)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우승을 차지한 1일 포항의 한 호텔에서 만난 황 감독은 “90분이 모두 흐르고 난 뒤 추가시간에 한두 번 슈팅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했지만 사실 골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울산의 수비전술에 맞서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골이 터지지 않자 답답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같은 선수가 없는 한 울산의 밀집수비를 뚫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래도 준비한다고 했는데 잘 통하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 감독은 계속 공격적인 선수들을 투입하며 울산을 끝까지 몰아쳤고 결국 승리했다.
부산이 울산을 2-1로 꺾어준 것도 행운이었다. 당시 울산이 부산을 이기면 울산이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울산은 부산과 비겨도 최종전에서 포항에게 4골 차로 지지 않으면 우승고지에 오르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산이 울산을 꺾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포항이 최종전에서 울산에 승리하기만 하면 울산을 승점 1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황 감독은 “부산-울산 경기가 끝난 뒤 부산 윤성효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말했더니 윤 감독이 웃으며 ‘내 할일은 다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황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44), 서울 최용수 감독(40)과 더불어 한국 축구를 이끄는 신진 40대 감독군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황 감독은 종종 전화로 홍 감독, 최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부족한 점을 배운다고 밝혔다. 국가대표팀 감독(홍명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감독(최용수) 중에 어느 쪽이 부럽냐는 질문에 황 감독은 “둘 다”라며 웃었다.
울산 전 결승골의 주인공인 김원일은 경기 직후 황 감독이 라커룸에 들어와 짧게 던졌다는 한마디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선수들이 다시 한 번 황 감독을 명장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고맙다. 그리고 모두 뛰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
포항=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