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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수준급 무대-연주… 밋밋한 감흥

입력 | 2013-12-03 03:00:00

국립극단 연극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




“전쟁터를 훔쳤다”고 몰아세워지는 순박한 화전민 여인들. 국립극단 제공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이해가 안 돼서…. 설명을 좀 들어봐야겠어.”

지난달 27일 막을 올린 국립극단의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을 관람한 뒤 받은 휴대전화 메시지다. 잠깐 망설이다가 회신을 보냈다.

“난 재미없었어. 그런데 2시간 넘게 앉아서 지켜보고 다시 추가 설명을 들어야겠다면서, 재미있었다고?”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진 극단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일찌감치 선정해 오랜 기간 담금질한 연극이다. 2008년 제45회 동아연극상 희곡부문 수상자인 김지훈 작가는 2년 전 9월부터 이 이야기에 매달렸다. 김광보 연출은 차기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유력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재미없어도 툭 터놓고 재미없다 하기 껄끄러운 진용이다. 졸려서 혼났다고 했다간 얕은 소양 탓에 진지한 인간사 풍자를 읽어내지 못했다고 손가락질받기 딱 좋다. 하지만, 재미없었다. 1시간쯤 넘긴 뒤부터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과 싸웠다. 객석 불이 켜지자마자 잰걸음으로 극장을 빠져나와 이어폰을 꽂았다. 갈증에 시달리다 허겁지겁 물을 들이켜듯 볼륨을 높였다.

국립극단은 개막을 보름 앞두고 공연장소를 변경한다고 알렸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보수공사가 예정된 공사기간을 맞추지 못한 탓이었다. 무대 공간에 대한 우려가 당연히 불거졌다. 그러나 초연 무대 공간의 짜임새는 별다른 흠결을 찾기 어려웠다. 산 아래와 봉우리 진지를 오가는 이야기 흐름에 따라 배우들의 동선이 어색함 없이 이어졌다. 무대 양편에 갈라 앉은 연주자들은 과장을 자제한 섬세한 소리로 시선의 집중도를 높였다.

무의미한 전쟁터에 끌려나온 농민병사들이 맡은 진지를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기로 작당한다. 지나던 화전민 아낙들이 병장기를 담보로 맡고 길양식을 변통해 준다. 순박한 여인들은 진지를 움막 삼아 지내며 그들을 기다린다.

종국에는 저 여인네들 모두 한심한 병정놀이에 휘말려 저곳에서 죽음을 맞겠구나. 예상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겨운 정치놀음에 짓이겨지는 그들의 가련한 삶을 조명한 시선의 가치가 충분하므로 이야기의 밋밋함은 아무 흠이 안 되는 걸까.

가장 큰 관객 반응을 이끌어낸 건 극 중반 왈가닥 여인 아주까리(황석정)가 뱉어낸 걸쭉한 욕설이었다. 몇몇 관객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객석 사이로 맥없이 번지다 사그라졌다. 혹 설명을 들었다면, 웃을 수 있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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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오영수 김재건 정태화 길해연 김정영 최승미 이승주 유수미 문경희 전형재 유성주 강학수 출연. 8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3만 원. 1688-5966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