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中企협력센터, 중소 제조업체 500곳 분석

권혁진 써키트플렉스 대표는 10여 년 전 해외 자동차 브랜드들이 자동변속기와 엔진 등에 인쇄회로기판(PBC)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FPC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시제품을 처음 만들었다. 2008년부터 연구개발(R&D)에 총 30억 원을 투자한 끝에 현대·기아자동차 1차 협력사인 경신에 2011년부터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10∼2012년 연평균 49.1%씩 늘었고,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10.5%에 이른다.
써키트플렉스처럼 국내 초우량 중소기업들은 ‘R&D 투자를 통한 앞선 기술 확보’, ‘대기업과의 거래를 통한 안정적인 수익 창출’, ‘최고경영자(CEO)의 도전 의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연구개발비, 저성과 기업의 5배
초우량 기업들은 지난해 연구개발비(연구비와 개발비 합산)로 평균 17억2936만 원을 썼다. 반면 저성과 기업은 3억3961만 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리콘웨이퍼 절단 장비를 생산하는 네온테크는 직원 87명(지난해 말 기준) 중 70명 이상이 엔지니어다. 이 회사는 올해부터 매년 순이익의 10%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주기로 했다. 황성일 대표는 “최근 3년간 월급의 200%를 성과급으로 줘 왔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회사 성과의 10%를 돌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네온테크는 2000년 기계를 1000분의 1mm까지 조작할 수 있는 초정밀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2010년 애플 하청업체인 대만의 유니마이크론과 거래를 시작한 데 이어 올해 일본 교세라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 국내외 대기업과의 안정적 거래
초우량 기업들은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직접 시장을 공략하는 대신 국내외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 모험을 통해 기회 만드는 CEO
CEO의 위험감수 성향을 1∼5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초우량 기업의 위험감수 성향은 3.19로 저성과 기업(2.77)보다 높았다.
변압기를 생산하는 A사는 5년 전 180억 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 마진이 낮은 공공조달 시장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약 2년 전 수출을 시도하다가 3억∼4억 원에 달하는 대금을 떼인 뒤 수출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소머금고 영농조합법인은 회사 규모는 작지만 과감한 투자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경북 영주시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던 박찬설 대표는 상처가 나거나 휘어진 고구마가 헐값에 팔리는 것이 아까워 고민하다 고구마빵을 만들기로 했다. 2004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8년 법인을 세웠고 지난해까지 토지와 설비 등에 총 45억 원을 투자했다. 박 대표는 “2010년 2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9억3000만 원으로 늘었고 현재 경남·북에 10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