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인천/경기]‘본드와의 전쟁’… 희망을 보았다

입력 | 2013-12-04 03:00:00

인천 흡입청소년 해마다 늘어 골치… 감시단원 678명이 판매업소 계도
청소년에 파는 곳 1년새 절반으로… 제조사엔 환각물질 빼고 만들게 해




인천시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단원들이 최근 인천의 한 슈퍼마켓을 방문해 본드를 청소년들에게 판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업주로부터 받고 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지난달 8일 오후 10시경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PC방.

(재)인천YMCA 청소년재단이 운영하는 인천시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이하 감시단) 소속 유순화 씨(52) 등 감시단원 5명이 PC방에 들어섰다. 전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탓인지 PC방에선 20여 명의 청소년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감시단원들은 PC방 업주에게 신분을 밝히고 PC방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아직까지 남아 있는 청소년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12년째 감시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 씨는 “내 아이가 술 담배 음란물 등 유해환경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다”며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유해환경이 너무 많아 봉사를 중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인천지역에는 시 감시단원 610명과 다른 단체 감시단원을 합쳐 678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단원들은 한 달 기준으로 많게는 20회까지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인천시와 인천지방법원, 감시단이 함께 나서 지난해까지 골칫거리였던 청소년 본드 흡입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얻었다. 인천 청소년 유해화학사범은 2009년 14명, 2010년 45명, 2011년 104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였다. 지난해 10월에는 남구 아파트 옥상에서 여고생들이 본드를 흡입하다 주민신고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지난해 인천에서 청소년 약물사범으로 사법당국에 검거된 학생 대부분은 환각물질인 톨루엔 성분이 함유된 본드를 흡입했다.

감시단이 지난해 10월 시내 164개 본드 판매업소(문구점, 편의점, 철물점,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4.5%인 156개 업소에서 청소년들에게 본드를 판매하고 있었다. 톨루엔 등의 환각 성분이 들어간 것은 청소년보호법, 유해화학물관리법에서 청소년 유해약물로 규정해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못한다.

감시단은 이후 시내 철물점, 슈퍼마켓, 대형마트 등을 돌며 ‘우리 업소에서는 청소년에게 본드를 판매하지 않습니다’란 홍보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하고 업주들에게 본드의 유해성을 알려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올해 10월 청소년에게 본드를 판매하는 업소는 50.3%로 급감하는 효과를 얻었다.

소년재판을 담당하는 인천지법 판사들도 본드 흡입으로 재판을 받는 청소년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드 공장을 직접 방문해 톨루엔을 대체하는 물질로 본드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판사들과 감시단은 기술표준원을 방문해 본드 제조 성분 및 제조 과정 기준 변경을 요구했다. 그 결과 올 9월 기술표준원 권고와 제조사의 결정으로 본드 제조 때 톨루엔 대신 사이클로헥산으로 성분을 대체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인천시는 이 같은 노력으로 올해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 활동사례 우수감시단 평가에서 최근 전국 17개 시도 중 1위를 차지했다. 시에서 위탁을 받아 2001년부터 청소년유해환경감시 활동을 벌여 온 감시단은 4일 최우수상인 여성가족부장관상을 받는다.

황유익 인천시 청소년육성팀장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환각물질의 위험성을 알리고 판매업소에 대한 지도 및 계도 활동을 펼쳐 청소년유해환경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