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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얘기 그대로 할 때, 그게 힙합”

입력 | 2013-12-04 03:00:00

데뷔 15주년 기념 앨범 낸 한국어 랩의 개척자 ‘가리온’




가리온은 ‘갈기가 검은색을 띤 흰말’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15년간 한국어 랩을 천착해 일가를 이룬 힙합 듀오에 걸맞은 이름이다. 왼쪽부터 MC 메타, 나찰. 피브로사운드 제공

올해 한국에서 힙합은 뜨거웠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마다 래퍼가 있다. 지드래곤이 대표적이다. 가요 음원 차트 최상위권에 래퍼 이름이 올해처럼 많이 등장한 해는 없었다. 게다가 힙합 팬이나 젊은층에서 쓰이던 ‘디스(diss)’란 말을 모르는 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몇 달 전 유명 래퍼들이 랩을 이용해 설전을 벌인 ‘디스전’이 국민적 화제가 되면서다.

한국 힙합 역사의 대변자로 ‘가리온’을 꼽는 이가 많다. 근데 가리온의 영광은 여전히 어둡다. MC 메타(본명 이재현·42)와 나찰(본명 정현일·36)로 구성된 이 힙합 듀오는 한국 힙합 1세대로서 현재까지 명맥을 잇는 유일한 팀. 영어 대신 우리말 문장 구조와 매력을 고집스레 살려온 한국어 랩의 개척자로 통한다. ‘가리온’이란 세 글자는 한국 힙합에서 ‘메탈리카’나 ‘마돈나’처럼 통하지만 돈과 명예와는 지독히도 연이 없는 무관의 왕이다.

가리온이 최근 15주년 기념 앨범을 냈다. 수많은 히트곡을 화려한 포장에 담는 대신 3년 만의 신곡 5개를 CD가 아닌 무형의 디지털 음원으로만 출시했다. 2일 밤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이들은 “환갑, 칠순 잔치처럼 나이가 들수록 성대하게 자축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14일 오후 7시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15주년 기념 공연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이들의 랩을 들을 수 있다. 02-338-1238.

―힙합이 뭐기에 15년이나 매달렸나.

“힙합을 접하기 전까진 삶에 의미가 없었다. 대중음악엔 두 가지 진입 장벽이 있다. 첫째, 좋아하는 것과 창조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 힙합은 창조를 할 수 있게 해줬다. 펜과 이야깃거리만 있으면 예술가가 될 수 있으니까. 둘째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면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 근데 힙합은 내 얘기를 그대로 할 때 그대로 힙합이거든.”(MC 메타)

―랩이 들어간 가요가 인기다. 이것도 힙합인가.

“페이크(거짓)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속상하다. 훨씬 멋진 게 가능한데 상업성 때문에 내 얘기가 아니라 남이 원하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를 연애화하는 한국드라마 공식처럼 뻔해졌다. 래퍼들도 다 연애를 한다.”(MC 메타)

―‘디스전’은 어떻게 봤나. 참전할 생각은 없었나.

“건드렸다면 참전했겠지.(웃음) 서로의 창조성을 북돋우는 배틀(겨루기)의 긍정적 측면 대신 서로 맘에 안 들면 까고 싸움질하는 게 힙합이라는 편견을 심어준 것 같아 안타까웠다.”(나찰)

―지드래곤 같은 아이돌 래퍼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YG도 초기와 달리 상업적 코드를 안고 가면서도 그 나름의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보인다. 단지, 힙합 본연의 멋이 더 우러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MC 메타)

“좀 더 가도 될 텐데 덜 가고 있단 생각이 든다.”(나찰)

―15주년 앨범이 너무 간소한 것 아닌가.

“무게를 덜고 싶었다. 초심을 담았다.”(나찰)

“우리가 처음 무대에서 했던 곡의 첫 소절 랩을 ‘그래서 함께하는 이유 2013’에 담았다. ‘PARADOX(패러독스)’는 영어로 제목을 쓴 첫 곡이다. 제목부터 역설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지만 진짜 랩으로 하고 싶은 건 남의 공감을 얻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1인칭으로 풀어냈다.”(MC 메타)

―목표는 뭔가.

“‘강남스타일’ 신드롬을 보면서 가능성을 느꼈다. 우리말로만 된 랩으로 세계인의 심장을 울리는 거다. 내 생애에서는 거기까지만 이루면 된다.”

(MC 메타)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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