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동연구도 중단 상태… 실현 기약하기 어려워그래도 한중일 공존 위한 최소한의 공통분모 절실정치가 벌여놓은 갈등, 학자들의 학문적 양식에 기대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동 교과서가 태어나기까지는 멀고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공동 교과서를 만들려면 한중일 학자들이 참여하는 공동의 역사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학자들의 견해가 어느 정도 일치해야 교과서 발간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공동 역사연구를 두 차례 시행했고, 중국과 일본도 한 차례 공동연구를 했다. 하지만 공동 교과서 발간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각의 차이가 워낙 컸다. 그나마 2010년 이후에는 공동연구조차 중단된 상태다. 중국이 한국 일본과 다른 체제를 갖고 있는 것도 공동 교과서 편찬에 큰 걸림돌이다. 당장 시작하더라도 언제 결실을 볼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중국 공산당의 혁명사와 계급투쟁 역사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중국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마오쩌둥 시절만 해도 1851년 일어난 농민혁명인 태평천국운동을 중시하고, 서구식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에는 비판적 자세를 보였으나 최근 교과서들은 양무운동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장경제 도입 이후 민중운동보다는 개혁운동을 강조하는 흐름의 일환이다. 한중일의 체제 차이에 따른 역사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진전이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지난해부터 개설한 ‘동아시아사’라는 과목도 눈길을 끈다. 중국 일본은 자국사(自國史)와 세계사만을 가르치고 있으나 한국은 한국사 세계사 이외에 동아시아사를 추가했다. 젊은 세대들이 자국사 위주로 공부하게 되면 주변국에 대한 배타주의로 흐를 수 있으므로 세 나라의 역사와 교류사를 함께 배우도록 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한다는 취지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저마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신선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공동연구와 공동 교과서 발간의 아이디어는 정치권으로부터 나왔다. 정치지도자들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외교 관계가 악화되자 꺼내든 카드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이었다. 한일 공동연구는 2001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다. 중-일 공동연구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중-일 관계가 악화하자 2006년 10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합의했다.
한일 공동연구에 참여했던 한 일본 학자는 2008년 토론에서 중국 당나라의 역사가 유지기의 글을 인용해 공동연구의 방향을 제안했다. ‘옛날 역사가들은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은 반드시 칭찬하였으며 자기 나라의 나쁜 점을 숨기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 역사가들은 자기 나라의 뛰어난 점만 자랑하고 다른 나라의 못한 점을 왈가왈부하고 있다.’ 정치는 대중적 인기를 따라가지만 학문은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각기 다른 세계다. 공동 교과서의 실현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세 나라 학자의 학문적 양식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