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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공소시효 25일 남기고 前남편 살해 들통

입력 | 2013-12-04 03:00:00

내연남과 짜고 교통사고 위장… 보험금 1억 타낸 50대女 구속
올해 8월까지 범죄 6846건… 공소시효 만료로 미제사건 종결




신모 씨(58·여)는 일명 ‘교통사고 나이롱환자’였다. 올해 8, 9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허위진단서를 발급받아 수차례 병원에 입원했다. 보험금 수령 기록을 수상히 여긴 보험사의 신고로 사기 혐의로 붙잡힌 신 씨는 전북 군산경찰서에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해당 보험사는 서울지방경찰청에도 이 내용을 알려줬다. 상습 보험사기는 숨겨진 추가 범행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험사는 경찰과 정보를 공유한다.

사건을 살핀 서울경찰청 강력계 장기미제전담팀은 신 씨가 15년 전에 전남편 강모 씨(사망 당시 48세)를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기록을 발견했다. 1998년 12월 20일 오후 11시 반경 강 씨는 전북 군산시 지곡동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 씨의 차는 내리막길에서 돼지 축사를 들이받았다. 운전석에 있던 강 씨 시신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8%였다. 소주 3병을 마신 수치다.

사고 석 달 전 강 씨는 아내 신 씨와 이혼했지만 사망보험금 수령자는 모두 신 씨였다. 게다가 신 씨는 내연남 채모 씨(63)와 사귀고 있었다. 경찰은 신 씨와 채 씨가 공모해 강 씨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냈을 것으로 의심했으나 이들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신 씨의 딸은 “사고 시각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고 채 씨의 주변인들도 “채 씨는 그때 우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말했다. 둘은 무혐의로 풀려났고 사건은 미제 타살사건으로 종결됐다. 신 씨는 사건 3년 뒤 보험사와의 민사소송 끝에 사망보험금 약 1억 원을 수령했다.

장기미제전담팀이 이 사건 무혐의 처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을 때는 공소시효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전담팀은 재조사를 서둘렀다. 신 씨가 보험금을 수령해 미리 준비한 자녀들의 계좌에 나눠 이체한 사실을 알아냈다. 보험 가입 서류의 강 씨 서명은 신 씨의 필적이었다. 알리바이를 진술했던 참고인들은 전담팀의 끈질긴 설득에 “당시 신 씨와 채 씨가 시켜서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했다. “15년 전 채 씨가, 자기가 사람을 죽였고 2억 원이 생긴다고 말했다”는 참고인의 진술도 확보했다. 사고 시각에 어머니와 같이 있었다고 주장했던 신 씨 딸이 그 시각에 집전화로 어머니의 무선호출기(삐삐)에 호출한 기록을 찾아냈고 결국 딸도 허위 진술이었다고 실토했다. 전담팀은 공소시효 만료 불과 25일 전인 지난달 24일 채 씨와 신 씨를 구속했다.

조사 결과 신 씨는 남편의 사업이 망한 뒤 채 씨와 가까워지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 씨는 남편 강 씨 앞으로 3개 보험사에 5억7500만 원 상당의 교통사고 보험에 가입한 뒤 범행 당일 오후 7시경 남편을 불러내 술을 마시게 한 뒤 채 씨를 불렀다. 채 씨는 승용차 안에서 차량공구로 만취한 강 씨의 머리와 얼굴을 수차례 내려쳐 죽인 뒤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둘은 범행 한 달 전 범행 장소를 여러 번 답사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신 씨와 채 씨는 범행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보험금은 모두 신 씨의 몫이 됐다.

최근 신 씨가 저지른 보험사기가 아니었다면 15년 전 사건의 진실은 묻힐 뻔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공소시효가 끝나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은 7만1930건이다. 이 중 살인은 11건, 강도는 25건, 강간은 33건이다. 올해는 1월부터 8월 사이 6846건의 범죄가 미제사건으로 종결됐다. 미국 대부분의 주는 살인에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