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거래가 한산하지만 은행 외화예금 창구에는 수출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외화예금이 상반기에 빠졌다가 하반기부터 크게 증가했다”며 “단기 결제성 대기 자금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 ‘불황형 흑자’에 기업 외화예금 증가
하지만 속을 까보면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내수 침체에 따른 수입 감소가 무역 흑자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올해 1∼10월 수출은 1.9% 늘었지만 수입은 1.2% 감소했다. 12월 말 결제 수요가 몰리면서 대기자금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달러가 넘쳐나는 원인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단기 자금을 넣어두는 외화 보통예금 잔액이 11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말보다 43% 증가했다”며 “12월에 결제수요가 많아 외화예금 잔액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금리 낮을 때 달러 마련하자”
외화예금 증가에는 공기업의 움직임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달러가 부족해질 것을 대비해 6월경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들에 ‘외화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확보하도록’ 독려한 게 컸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선진국 경기가 살아나고 미국 달러가 강세가 되면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금리도 높아진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금리가 쌀 때 미리 달러를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 “한꺼번에 달러 쏟아지면 환율 급락 우려”
보유 외화 규모가 크지 않은 일부 중소기업 중에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 뒤 환율이 반등할 거라 보고 기다리는 곳도 있다. 발전소용 파이프를 수출하는 A기업은 “엔화 약세인 상황과 양적완화 축소를 고려하면 조만간 환율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 당장 원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일단은 달러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쌓아놓은 외화가 언젠가는 시장에 풀릴 거라는 것.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경계선인 달러당 1050원이 무너질 경우 기업들이 앞다퉈 달러를 쏟아낼 수 있고 이는 환율 급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 / 세종=홍수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