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가정보원 개혁 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국정원의 자율 개혁 대신 국회에 의한 타율 개혁을 하겠다는 의미다. 댓글 사건으로 드러난 국정원 정치개입 악습을 확실하게 근절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만 국가안보의 첨병인 정보기관을 다루는 만큼 정략을 벗어난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정보기관은 국내파트와 국외파트가 구별돼 있고 국내외 파트를 막론하고 정치개입을 단절한 지 오래다. 그러나 국정원은 민주화 이후에도 독재시대의 악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국정원의 피해자였던 야당조차 집권한 이후에는 불법 도청 등의 유혹에 빠졌다. 특위는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개입을 못하도록 국정원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불법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거부한 내부고발자를 적극 보호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민족이 둘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북 정보전은 국외와 국내가 긴밀히 연결돼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국정원을 선진국형 정보기관으로 바꾸되 인터넷 세상의 국경 없는 심리전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특위가 논의해 올해 안에 입법화하기로 한 내용 중 불안한 대목도 적지 않다. 정보위 상설 상임위화는 국가안보기관이 야당 눈치만 보다가 할 일을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비밀열람권 보장도 정보위 속기록마저 인터넷에 유출되는 상황에서 걱정이 없지 않다. 사이버심리전 규제는 북한의 국경 없는 사이버 공작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까지 방해해서는 곤란하다. 국정원 개혁이 국정원을 무력화시키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이번 합의는 민주당이 당연히 해야 할 예산안 처리를 볼모로 삼아 이룬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면도 없지 않다. 그래도 특검보다는 특위가 미래지향적이다. 1년 가까이 정국을 교착시킨 국정원 댓글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에 맡기고 국정원 개혁을 위해 여야가 최선의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