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접견권 침해했다” 간첩사건 주범에 국가배상 판결 전경 폭행한 변호사 무죄 선고, 그 변호사 체포한 경찰은 유죄 허술하게 만들어진 법 제도, 상식을 벗어난 법 집행이 법치주의 파괴 오히려 조장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장애인과 함께 살지도 않는 보호자나 가족이 장애인 자동차 표지를 발급받아 각종 혜택을 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한국에서는 가능할까. 한국인이 선진국 국민보다 더 비양심적이라 그럴까.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의 존 리스트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법과 제도가 잘 정비돼 있으면 사람들은 선량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법 제도가 조금만 허술해지면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다음으로 이 게임에 ‘독재자’가 조원으로부터 1달러를 뺏어도 된다는 옵션을 추가했다. 사소해 보이는 이 옵션이 게임의 결과를 크게 변화시켰다. 조원에게 돈을 나눠주는 ‘자비로운 독재자’의 비율이 70%에서 절반인 35%로 확 줄었다. 그리고 ‘독재자’의 20%는 조원의 1달러를 갈취하기까지 했다. 리스트 교수는 사람들이 선하거나 악하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규칙(법)과 제도가 주는 인센티브(誘引·유인)에 반응하는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리스트 교수의 결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한국에서는 불법 폭력 시위를 일삼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가 2006년 6월 미 백악관 건너편 공원에서는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폭력 시위에 대처하는 양국의 법 제도 차이가 같은 시위대의 인센티브를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간첩단 ‘일심회’ 사건의 주범 장민호가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소송에서 “국가는 장 씨에게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독일도 내란이나 간첩 사건 피의자에겐 변호인의 수사 참여를 제한한다. 그런데 우리의 법 제도가 얼마나 허술하기에 비장애인이 장애인 특혜를 훔치듯 간첩이 변호인 접견권 침해를 이유로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아낼까.
우리의 법 집행 역시 법 제도만큼이나 허술하고 모순투성이다. 2년여 전 수원지방법원은 2009년 6월 쌍용자동차 사태 당시 전경들을 폭행하고 호송 차량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권모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수원지법 항소심 법원은 쌍용차 사태 때 권 변호사를 불법 체포한 혐의로 기소된 경찰 간부에게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그 간부는 면직된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2일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비정상(非正常)의 정상화’의 기본은 법치주의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서는 먼저 법 제도부터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간첩이 배상을 받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비정상이 더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단호하고 공평무사한 법 집행을 통해 공권력의 권위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폭도들에게 공권력이 유린당하는 무법천지는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비장애인이 장애인 특혜를 훔치는 것과 같은 형태의 그릇된 인센티브를 바로잡을 수 있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