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여성시대]4부 성평등 인식<3>여대생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왜 지원했나.
“나라를 지키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 제일 존경하던 사람이 유관순 열사였다. 대학 1학년 때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같은 북한의 만행을 보고, 국가안보를 위해 더 헌신해야겠다는 꿈이 확고해졌다. 다행히 성신여대에 ROTC가 설치되어 꿈을 이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여대생과 군인의 이미지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내가 여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군인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문보미·정치외교학과 4년)
“각개전투(병사 개개인이 총검술 따위로 벌이는 전투), 수류탄 던지기, 화생방 과목 등이 있다. 강도가 높아 남자들도 힘들어한다. 하지만 끈기와 정신력만 있다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군의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나는 여자가 아니라 군인이라는 다짐을 잃지 않았다.”(현이경·스포츠레저학과 4년)
―2013년 겨울훈련에서, 성신여대 ROTC가 남자 ROTC를 제치고 1위를 했다. 비결은….
“방학도 반납하고, 2주간의 집체훈련(부대 단위로 받는 훈련)을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훈련을 받고, 8시까지 보충교육과 이론공부를 했다. 개인화기 과목의 경우 모형 총에 쇠붙이를 붙여 실제 K2 소총 무게(탄약 포함 약 4kg)와 동일하게 만든 뒤 연습했다. 처음엔 무겁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가볍다. 쉬는 시간에도 동기들끼리 ‘방독면 빨리 쓰기 경기’를 하는 등 훈련을 생활화했다. 또 매일 아침 체력단련시간에 수류탄 던지는 연습을 했다. 동기들이 서로 도우며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조은애·경제학과 4년)
―군은 남자만의 영역이어서 여자에게 한계가 있지 않을까.
“오래달리기를 하다 보면 구토가 생기기도 하는데 우리는 토하면서도 계속 달린다. 육체를 지배하는 건 정신이다. 여기에 남녀가 있을 수 없다. 남자 후보생들은 병역에 대한 의무감으로 군에 가지만 여자들은 국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원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남자보다 더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는 거다.”(신세라·스포츠레저학과 4년)
“남자들도 처음에 편견을 가졌으나 이제 우리를 여자가 아니라 동등한 후보생으로, 동기로, 전우로 인정해준다.”(현진솔·스포츠레저학과 4년)
올 3월 건국대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열고 참석 대의원 99명 중 81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경희대 학보인 대학주보가 올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264명 중 706명(55.9%)이 총여학생회 폐지에 찬성했다. 이 학교 역시 지난해 총여학생회 선거에서 입후보자가 없었으며, 올해 열린 보궐선거에도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됐다. 서울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등도 총여학생회가 없어지거나 총학생회 산하 여성위원회로 흡수됐다.
이처럼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가 사라지는 이유는 수년간 입후보자가 없거나, 학생 참여가 낮아 기구가 유명무실해진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건국대 박경수 부총학생회장(화학공학과 4년)은 “2011년부터 총여학생회 입후보자가 없어 인수·인계는 물론이고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학내 비주류였던 여학생들이 대학 내에서 주류로 승격하면서 발전적 해체를 해가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0년 연세대는 종합대학으로는 처음 정나리 씨(사회복지학과 96학번)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화제가 됐다. 곧이어 2004년에는 서울대 강원대 숭실대 등 7곳에서 여학생이 총학생회장이 됐다. 이 중 한동대의 경우 여학생 비율이 30% 수준인데도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여학생들이 능력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각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고려대 송한아 씨(21·여·경영학과)는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못할 것이 없는데 왜 역할과 권한이 제한된 총여학생회장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둬야 하느냐”고 했다.
서강대 사회학과 오세일 교수도 “여학생들이 학내에서 중심적인 위치로 올라서면서 과거 비주류이자 소수였던 여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이 많이 약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가 여풍(女風)은 학내 여론을 주도하는 교내 여성잡지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지와의 관계 변화에서도 불고 있다. 연세대 학보사 ‘연세춘추’의 경우 현재 44명 중 32명이 여학생이며, 편집국장도 여학생이다. 6개월 임기인 편집국장의 경우 최근 3기 동안 모두 여학생이 편집국장을 했다. 서강대 학보사인 ‘서강학보’도 12명 중 9명이 여학생이며 편집국장 역시 여학생이다.
반면 페미니즘 잡지인 성균관대 교지인 ‘정정헌’, 연세대 여성자치언론이 내는 ‘두 입술’, 성공회대 ‘N’ 등은 발간이 중단되거나 재정 및 인력난을 겪고 있다. 다른 대학의 여성 관련 잡지도 모두 적은 인원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대 페미니즘 교지인 ‘석순’ 관계자는 “지원자, 활동 인원 등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여성 학우들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여성주의 교지가 위기인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김민지 씨(24·여·간호학과)는 “적어도 학교 안에서만큼은 여자라고 차별을 받거나 불편한 게 전혀 없는데 여학생을 위한 잡지들은 여성의 기득권이나 피해의식만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적인 성향이 있어 읽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 책임도 권리도 똑같이
지난 봄 서강대 광고학개론 시간. 수업 중에 한 여학생이 벌컥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 여학생은 수업 중인 교수에게 “죄송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여기 앉아 있는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듯해 전화번호를 ‘따려고’ 왔습니다”고 했다. 교수는 황당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며 웃으며 승낙했고 이 여학생은 해당 남학생에게 다가가 전화번호를 얻어갔다고 한다. 매사에 당당한 여대생들이 성(性)문제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신촌의 한 모텔 사장은 “과거에는 여대생들이 (여관방에) 남자들에게 억지로 끌려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요즘은 남자들은 여관비만 계산하고 나가고 여대생들은 모텔 할인권, 시간 추가 서비스까지 챙겨갈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침대 모양, 욕조 형태까지 세세히 물어봐 여대생들이 좋아하는 인테리어로 바꾸었을 정도”라고 했다.
요즘 세대는 단순한 성 평등이 아니라 ‘책임도, 권리도 똑같이’로 발전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여대생 김모 씨(22)는 남자친구와 각자 15만 원씩 입금한 데이트 통장을 만들어 이 돈으로 데이트 비용을 충당한다. 김 씨는 “남자라고 용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왜 항상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내야 하느냐”며 “주변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는 2009년 여학생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선 이후 죽 이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2012년 여 74.3% 남 68.6%). 전공 선택에서도 금기는 없다. 전반적인 이공계 기피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이공계열 대학 석사과정 여학생 수는 2006년 1만699명에서 2011년 1만3808명으로 29.1%포인트 늘어났다. 박사과정은 3258명에서 4944명으로 무려 51.7%포인트 증가했다. 석사과정의 경우 2000년 7400여 명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으로, 박사과정의 경우 2000년 1400여 명인 것과 비교하면 3.5배가량으로 급증한 결과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목지선 인턴기자 성신여대 영문과 졸
이병철 인턴기자 서강대 신방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