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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심리적 하층민

입력 | 2013-12-06 03:00:00


국민의 46.7%가 “나는 하층민”이라고 답변했다. 통계청이 이 조사를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상층”이라는 답변은 1.9%에 불과했다. 건강한 사회라면 “중간층” 응답이 50∼60%쯤 되고 “상층”과 “하층”이 각각 20∼25%가량 돼야 정상이다. 한국인들의 사회·경제적 상실감이 지나치게 큰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하층민” 답변이 급증하고 있다. 1988년 37%에서 조금씩 늘었으나 2009년 42%, 2011년 45% 등 몇 년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4000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률도 2.8%로 회복세가 뚜렷하다. 객관적 수치와 주관적 만족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행복지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유엔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56위로 경제규모(15위)에 크게 못 미친다. 돈은 좀 있는데 마음이 공허하다는 뜻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민의 불안감이 커졌다. 무차별적 세계화로 양극화가 심화하고 노후 불안도 심해졌다. “노후 대비는 포기했어요. 당장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어렵잖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나라 위상에 많이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 구성원의 분자화 현상 또한 뚜렷하다.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 국민들에게 던진 이 질문에 한국인의 7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OECD 평균 90%에 못 미친다. 고립감 단절감을 느끼는 한국인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중산층이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척추라면 중산층 의식은 그 속에 든 척수다. 빈부, 이념, 지역 갈등을 완충하는 안전판이다. 중산층 의식이 흔들리고 유대감이 약화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다. 그걸 치유하는 게 정치이고, 처방전을 놓고 경쟁하는 게 선거다. 그러나 정치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고, 처방전은 곧잘 폐기처분된다. 이래저래 스산한 요즘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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