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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로봇 개발해 놓고 투자비 없어 ‘낮잠’

입력 | 2013-12-06 03:00:00

[바이오기술이 미래먹거리]<4>상용화 안되는 의공학기술




국립암센터 의공학연구과가 2008년 개발한 복강경수술장비 ‘라파로봇(LAPAROBOT)’. 비좁은 수술부위도 3차원 카메라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미국의 의료기기 개발사 인튜이티브서지컬. 수술로봇의 대명사인 ‘다빈치’를 개발한 곳이다. 다빈치를 이용한 수술은 다양한 외과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다. 그 덕분에 이 회사는 다빈치의 판매와 유지 보수 등으로 매년 1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다빈치에 버금가는 수술로봇이 있다. 2008년 국립암센터가 복강경 수술로봇으로 개발한 ‘라파로봇(LAPAROBOT)’이 바로 그것. 수차례 동물 실험을 거쳐 안정성을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좁은 수술공간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는 3차원 카메라까지 개발해 장착했다.

다빈치는 수술 부위에 따라 수백만 원에 달하는 전용 수술도구가 장착된 로봇팔을 바꿔 끼워야 하지만, 라파로봇은 기본 장치에 복강경 수술 장비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어서 유지비도 절반 이하다. 그러나 제품화되지 못해 의료 현장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전기연구원이 공동으로 수술실에서도 손쉽게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할 수 있는 ‘이동형 3차원(3D) CT’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양대 이병주 전자시스템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이비인후과 치료 보조기기인 ‘이소봇’이나, KAIST 권동수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무흉터수술로봇, 전남대 박종오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팀이 개발한 혈관치료용 마이크로 로봇도 실제 제품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의료기기 무역적자는 연간 1조 원 수준. 외국 기술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당장이라도 상용화할 수 있는 의공학 기술들이 왜 제품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정부의 투자 방향이 상업화가 아닌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시장에서 통용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기술만 개발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난달 ‘BT투자전략’을 발표했다. 장기간 개발이 필요한 기술집약적 의료기기 개발 투자를 늘리는 한편, 산업체와 병원이 연구개발 초기부터 사업화를 목표로 공동으로 연구 개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구축하고, 국내외 기술 이전을 추진할 전담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조영호 국립암센터 의공학과장은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은 고가 의료장비를 제품화할 초기 투자 비용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선뜻 제품화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다”며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대형기기 개발에 참여하고,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기업 간 얽혀 있는 특허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나라도 의공학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우리나라의 강점인 정보통신기술(ICT)과 의료기술 융합을 통해 새로운 틈새시장을 노리는 한편 정신질환 치료용 3D 콘텐츠나 모바일기기를 이용한 건강 모니터링 서비스 등 ‘스마트 의료기술’ 개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박종오 교수도 “국산 의료기기가 상용화되려면 다빈치처럼 유명 의료기기가 선점한 분야보다는 새로운 틈새시장을 노려야 할 필요가 있다”며 “새 분야를 개척해 특허를 선점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