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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멍 때리던 소년, 피아노 치며 달라져

입력 | 2013-12-07 03:00:00

◇멍 때리기/애드리안 포겔린 지음/정해영 옮김/328쪽·1만3000원/자음과모음




온통 단조인 그런 나날이 있다. 사춘기 소년 저스틴이 그랬다. 아빠는 바람나서 집을 나가 버렸고, 나약하고 히스테릭한 엄마는 밥은커녕 침대에서 울기만 한다. 입대한 형은 이라크로 파병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해 온다. 이 와중에 가장 친한 친구 벤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더니 얼굴 보기가 어렵다.

저스틴은 평범하고 소심한 소년이다. 별명은 ‘돼지비계’. 얼굴에는 여드름이 만발했으며 운동 실력도 신통치 않다. 아빠는 연락두절이고 엄마와는 제대로 된 대화가 어렵다. 의지하는 형에게 편지로나마 마음을 털어놓는다. 파탄 나기 직전인 집안, 위태로운 현실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멍 때리기’뿐.

꽉 막힌 어두운 세상에서 저스틴에게 다른 창문이 열린다. 저스틴이 남몰래 좋아하는 제미의 할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저스틴이 피아노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음악의 세계에 빠져드는 장면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난다. 단조를 치면서 문득 울기 직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다시 장조로 조바꿈을 하면서 희망을 그린다.

‘신나는 화음을 만들려면 중지를 검은 건반에서 흰 건반으로 슬쩍 내리기만 하면 된다. 기쁜 것과 슬픈 것은 그렇게 가까이에 공존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제미의 할머니는 원숙한 어른의 표본 같다. 할머니는 저스틴을 채근하거나 윽박지르는 법이 없다. 그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 단정 짓거나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저스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따스하게 도닥여 준다.

잔잔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저스틴이 느끼는 세밀한 감정으로 갖가지 색을 입었다. 아빠 곁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의 상실감, 낙담과 우울에서 허우적대는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 여자친구가 생긴 단짝에게 느끼는 거리감, 제미를 대할 때의 설렘이 생기 있게 그려진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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