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비평서 ‘리좀…’ 낸 김해완
“제대로 글 쓰고 싶어 고교 중퇴하고 공부 시작했죠 글쓰기란 삶을 만드는 과정” ―‘중졸 백수’ 김해완
“솔직히 아쉬움이 커요. 더 편하게 풀어야 했는데, 글이 울퉁불퉁해요. 아직 여물지 못한 탓입니다. 같은 또래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담았는데, 너무 어렵게 썼어요.”
뜨끔했다. 동년배는 둘째 치고 마흔 넘은 기자도 읽다 머리를 싸맸다. 공력이 약해 글이 난해해졌다? 노장 학자에게서나 듣던 말을 ‘애’한테 들을 줄이야. 게다가 이 조숙한 말투는 대체 뭔가.
하지만 그가 선택한 공부는 남과 달랐다. “또 다른 구속이 존재하는” 대안학교를 고교 1학년에 때려치우고, 2008년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 들어갔다. 지금은 그 모임에서 분화된 ‘남산강학원’ 연구원으로 있다. “대입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할 만큼 정신없이 읽고 쓰고 토론했다.
‘리좀…’은 그 치열했던 5년에 하나의 방점을 찍는 작업이었다. 그에게 가장 큰 충격과 지침을 줬던 책이 ‘천개의 고원’이었으니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을 ‘도구로 써 달라’고 당부했다. 저자는 그 인문학적 개념을 사용해 삶과 세상과 조우하는 길을 찾고 싶었다.
“10대는 누구나 미래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천개의 고원’은 말하죠. 자신을 표피로 규정짓지도 말고, 일상의 심층을 깨달으라고. 뭣보다 ‘살기는 쓰기’라고 일러줘요. 쓰기란 자신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제게 이 책은 어렴풋한 불안을 잠재우고 한 발짝 내딛는 힘을 주는 매개체였습니다.”
읽는 즐거움에 푹 빠진 어린 학자에게 추천도서를 물어본 건 실수였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는 짱짱한 명제로 자기 주체를 변환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단다. 니체와 루쉰의 글들은 자기비하나 연민에 빠지지 않게 도와줬고, 사마천의 ‘사기’는 시대와 인간을 어떻게 조망하는지를 알려줬다. 프랑스 역사학자 에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의 중세 미시사 ‘몽타이유’와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계종말전쟁’도 끝내준단다. 좀 쉬운 책은 없나.
졌다. 기자도 읽긴 했는데, 같은 책 맞나. 살짝 머쓱해졌다. 일단 ‘리좀…’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은 어디로 나아갈까.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다만 청년학도여, 너무 속도는 내지 말길. 서두르면 빨리 지치니.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