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정수복 지음/348쪽·1만9500원/알마
1965년 프랑스 파리 유학시절의 박이문. 알마 제공
30대에 촉망받는 문학평론가이자 대학 교수가 됐지만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폭풍으로 성난 대양에 떠도는 난파선’처럼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문학과 철학을 새로 공부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출발해 칸트 철학과 영미 분석철학, 예술철학은 물론 노장사상까지 섭렵하며 지적 방랑을 멈추지 않았다. 목표는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엄습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투명하게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30년 만에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 3개 국어로 사유하고 글을 쓰는 국제적 철학자이자 시인이 되어 귀국했고 50년에 걸친 지적 방랑을 ‘둥지의 철학’으로 마무리 지었다.
박이문의 ‘둥지의 철학’이 ‘시적 철학’ 내지 ‘철학적 시’라는 점에서 철학자와 시인으로 박이문을 살펴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인간 존재가 허무를 피할 수 없다며 무신론자를 자처한 사람을 종교인이라고? 오로지 이성과 양심의 등불에만 의지해 평생 구도자의 자세로 살아 온 사람을 그럼 달리 또 뭐라고 불러야 할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