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보고 말을 걸다 (양희원 오현미 채준 지음|플러스81스튜디오 펴냄)
말, 달리자? 말 보자! 말 느끼자!…전문가가 속삭이는 그림 속 말 이야기
어느 날 미술관 큐레이터와 승마선수 출신 교관 그리고 말산업 전문기자가 모여 ‘작당’을 했다. 명화 속에 그려진 말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접목시키는 새로운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융합’이요, 요즘 말로 바꾸면 ‘창조 글쓰기’다.
미술관 큐레이터인 양희원 씨는 캔버스 안에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당대의 분위기와 화가가 처한 상황이나 신념 등 전체적인 작품에 대해 ‘썰’을 풀었고(느낌 아니까~), 마사회의 교관인 오현미 씨와 채준 기자는 매같은 눈과 현장의 감각으로 말과 사람의 행동을 분석했다. 각각의 전문가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작업을 했더니 명화만큼 멋진 근사한 ‘작품’이 나왔다. ‘말을 보고 말을 걸다’라는 책이 그것이다.
함께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윤두서의 작품 ‘유마백마도’에 대한 평이다.
“그림 속 백마의 가지런하게 정리된 갈기와 탄탄한 둔부, 힘 있는 꼬리와 빗질이 잘되어 찰랑이는 꼬리털까지, 공재(윤두서의 호)의 백마는 어느 한군데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유하백마도’는 어쩌면 공재 자신일지도 모른다. 혼자 나무에 묶여 있는 모습은 정계진출을 포기하고 홀로 귀향한 당시 공재의 상황과 겹치며, 흠 없고 깨끗한 흰말은 그의 성품을 은연중에 나나낸 것 같다. 나아가 백마의 당당한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꿋꿋하게 견뎌 나가는 그의 기백이 느껴진다.”
카~ 섬세하다. 백마가 화폭을 박차고 뛰어나올 것만 같다. 공재의 머리 속과 마음 속을 백마 등에 올라타 주유하고 온 듯하다. 세 사람은 이 그림을 함께 마주하며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만큼 깊이 있게 그리고 자세히, 때론 토론하며 때론 술잔을 기울이며 말과 그림과 시대와 인물 속을 오갔을 것이다.
책을 넘기면 시원한 말 그림들이 시선을 먼저 잡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이 예술이 되고, 말이 되고, 때론 말을 건다. 이 책에 언급된 48개의 국내외 말 그림(엄밀하게 말하면 말 모델)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주 벌판을 누비던 선조들의 기상이 느껴지고, 등자에 발을 넣고 대제국을 호령한 칭기스칸의 기백이 살아오는 듯하다. 캔버스에 갇혀있던 말을 꺼내 타고 다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글은 또 어떤가. ‘아는 만큼 느낀다’다고 했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일독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힘들고 어렵고 답답할 때, 그리하여 어디론가 말을 타고 떠나고 싶을 때, 문득 ‘노마드’가 되어 푸른 초원을 달리고 싶을 때 꺼내 들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말 그림에 취해 그만.
연제호 기자 s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