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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에 시달리던 말년의 이규보… 금주와 음주 고민끝에 선택은 술

입력 | 2013-12-09 03:00:00


고려인 이규보에 관한 책 두 권을 동시에 낸 김용선 교수는 “이규보가 남긴 글을 통해 고려시대 가정, 관료 사회, 지식인의 풍류생활, 의료체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선 교수 제공

고려시대 문신 이규보(1168∼1241)는 당대의 천재 문학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순탄치 않았던 인생의 굽이굽이에서도 결코 낙천성을 잃지 않은 유쾌한 인물이란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이규보는 지방 향리 가문 출신으로 아홉 살 때 이미 글을 짓는 데 능해 기동(奇童) 소리를 들었지만 과거시험에는 여러 차례 낙방한 끝에 23세에 합격했다. 파면 탄핵 좌천 유배로 점철된 관료 생활을 했다. 집안 살림은 궁핍했으며 소갈증 수전증 피부병 눈병 같은 갖가지 질병을 앓았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도 애주가로 풍류를 즐겼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며 2000여 편이 넘는 시와 산문을 수록한 ‘동국이상국집’을 남겼다.

최근 김용선 한림대 사학과 교수(고려사)가 이규보를 통해 고려시대를 들여다본 신간 ‘생활인 이규보’와 ‘이규보 연보’(이상 일조각)를 동시에 펴냈다. 평전이 아니라 이규보를 통해 12, 13세기 고려 무인정권 시대의 생활사를 미시사적으로 살핀 작업이다.

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규보가 굴곡 많은 삶을 낙관적 성격으로 극복해낸 모습에 매력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며 “이규보는 일상에서 겪은 경험과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53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동국이상국집’ 덕분에 연구가 수월했다.

이규보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이었다. 겨울에 숯이 없어 냉골에서 떨면서도 ‘여름에도 얼음 없이 더위를 보냈는데 겨울에 숯 없다고 추위 걱정할 게 뭐 있으랴’라며 넘어갔다.

이규보는 술을 한번 마셨다 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으니 인사불성이 되어 말썽을 일으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말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음주와 금주 사이에서 고민하다 끝내 술을 택한 일화가 그의 시에 전한다.

‘나처럼 눈병을 앓는 사람이/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이 어때서/도리어 그대와 어울려/대취하고 크게 노래까지 불렀네/다시 두 눈은 더욱 어둑해지고/어지럽게 검은 꽃도 보이네/ 술을 마시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반드시 병이 더해질 터인데/알고도 끝내 끊지 못하니/병이 깊어진들 또 누구를 탓하리’

이규보는 다양한 출신과 성향을 가진 인물들과 교류했다. 자신보다 35세나 많은 아버지뻘 문인 오세재와도 절친했다. 김 교수는 “고려인의 특징으로 알려진 개방성이 이규보를 통해 더욱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이규보는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에 심취할 정도로 사상적으로 개방적이었습니다. 또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했고요. 명분을 중시한 조선 유학자들과 달랐습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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