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 뉴욕 특파원
미 언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적연금은 미국에서 한 번도 삭감된 적이 없다. 디트로이트 비상재정관리관인 케빈 오르 변호사는 이미 올해 초 디트로이트 3만6000여 명의 은퇴 공무원들에게 연금의 20%만 받을 것을 요구했다. 현 추세로 보면 연금 삭감을 관철할 가능성이 높다. 180억 달러(약 19조440억 원)의 부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퇴직 공무원에게 지급해야 할 공적연금 채무 35억 달러다. 디트로이트의 파산보호신청이 받아들여지던 날 일리노이 주 의회도 결단을 내렸다. ‘제2의 디트로이트’가 될 수도 있는 시카고 시 등의 파산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였다. 공적연금의 향후 지급 금액을 줄여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의 공무원들은 두 사례를 보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반면 지자체는 재정 악화 해결을 위해 ‘먼저 총대를 멘’ 디트로이트와 미시간 주의 결정을 내심 반기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에 따르면 시 및 주 정부가 공적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금액 중 부족한 금액이 4조 달러(약 4232조 원)에 이른다. 이는 미 전체 지자체의 적자 금액보다 큰 수치라고 AEI는 밝혔다.
디트로이트의 시위를 보면서 몇 년간 그리스에서 긴축을 반대해 벌어졌던 공무원 등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시위가 연상됐다. 그리스도 정부 곳간이 비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연금 개혁을 미뤄왔다. 연금 수령자들은 더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디트로이트 사례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거기서 인생을 바쳤던 퇴직 공무원들의 상생(相生)을 위해서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 묘안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다. 전문가들은 불입 금액을 늘리고 향후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연금 개혁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7조7000억 원이 투입됐고 박근혜 정부에서 15조 원을 공무원 연금 적자를 메우는데 써야 할 한국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제2의 아테네’ ‘또 다른 디트로이트’가 되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