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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차지완]4000명도 너무 많다

입력 | 2013-12-09 03:00:00


차지완 사회부 차장

스웨덴의 볼보자동차가 보행자 에어백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건 올해 2월 말이었다. 이 에어백의 원리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볼보가 ‘2020년까지 교통사고 사상자를 없앤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볼보의 비전이 스웨덴 정부와 의회가 1997년에 채택한 도로교통안전법안 ‘비전 제로(Vision Zero)’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비전 제로는 2020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를 0명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이기도 하다. 3월 1일 스웨덴 볼보 본사로부터 기자가 받은 e메일 회신 내용은 이렇다.

“정부의 비전 제로와 볼보의 ‘사고 제로(Zero Accidents)’ 비전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도 정부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은 교통안전의 최강 선진국으로 꼽힌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적은 나라다. 국립교통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의회, 교육계, 기업, 운송노조 등이 참여해 비전 제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교통안전 세미나에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거론되는 사례다.

교통안전 성적표에서 OECD 꼴찌 수준인 한국에도 희소식이 있다. 지난해 5392명이던 교통사고 사망자가 올해에는 대폭 감소해 1977년 4097명 이후 36년 만에 4000명대로 줄어들 것이란 정부의 예상이다. 본보와 채널A의 연중기획인 ‘시동 꺼! 반칙운전’과 같은 언론의 공익캠페인과 경찰의 지속적인 교통 단속 등 다양한 노력이 결합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4000명대도 선진국과 비교하면 너무 부끄러운 성적표다. 교통사고는 인간의 부주의와 욕심이 빚어낸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 때문에 교통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스웨덴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교통안전 업무를 조정할 강력한 기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정부는 너무나도 소극적이었다. 국무총리가 총괄하던 교통안전 관리 기능이 2009년부터는 국토교통부 장관 소관으로 격하됐다. 이명박 정부의 ‘교통사고 사상자 절반 줄이기’ 대책이 실패하자 박근혜 정부는 ‘교통사고 사망자 30% 줄이기’로 목표를 하향 설정했다. 목표를 높게 설정하는 선진국과 달리 실패를 두려워하는 정부의 소심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통안전은 보편적 복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간이 되는 ‘복지 인프라’에 해당한다. 고령 운전자와 보행자가 대폭 늘어나는 고령화 사회에 정부의 교통안전 정책이 ‘지금 이대로’라면 교통사고 사망자는 증가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교통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이제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 어떤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스웨덴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차지완 사회부 차장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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