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문: TPP에서는 무조건적인 ‘쌀 관세화’가 원칙이다. 쌀 시장 개방에 영향은 없나.
답: “쌀 시장 양허(讓許) 제외는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변함없다. 구체적인 조건은 예비협상을 통해 더 파악하겠다.”
관세화. 시장을 열되 수입 가격을 국내 가격 수준으로 끌어올릴 만큼의 고율관세(관세상당치)를 매겨 충격을 완화한다는 뜻의 통상용어다. 쌀 시장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10년간 관세화 예외’를 인정받았다. 놀라운 협상 성과였다. 10년 후인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릴 때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가 ‘쌀 관세화 유예’를 외치며 자신의 가슴을 찔러 숨졌다. 정부도 이를 관철해냈다. ‘비관세화’가 20년간 지속되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2008년 통상전문가들이 “이제 조기 관세화하는 게 쌀 농가에 유리하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국제 쌀값이 올라 국산 쌀의 경쟁력이 커지면서 생긴 일이다. 관세화를 유예할 경우 그 대가로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저율관세로 수입해야 한다. 그리고 매년 이 물량은 일정 비율로 늘어난다. 반면 관세화할 경우 관세상당치가 충분히 높아 수입이 더 늘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조기 관세화 주장의 요체다.
농림부도 공감하고 정책 전환을 위한 공청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경제논리는 무력했다. 정치색 짙은 농민단체가 단상을 점거한 것이다. 어영부영 4∼5년이 흘렀고, MMA 수입물량도 매년 확대됐으며, 관세화 전환 무산으로 인한 쌀 농민의 손실도 훨씬 커졌다.
앞서 일본은 1999년에, 대만은 2003년에 우리와 같은 이유로 조기 관세화했다. 하지만 한국은 “관세화는 쌀 전면개방을 위한 수순”이라는 소박한 반대 논리에 꽉 막혀 있다. ‘관세화 반대를 카드로 삼아 정부의 농업 지원을 더 확보하겠다’는 속내로도 읽힌다. 사인(私人) 간 ‘밀당’이라면 모르겠지만 공적(公的) 단체가 취할 전략이 아니다.
대개의 통상협상이 그렇듯 정부는 쌀 협상을 두 갈래로 진행해야 한다. 대외 교섭과 대내 설득이다. WTO에서 우리는 “관세화하되 1986∼88년 기준으로 계산한 (높은) 관세상당치를 매기겠다”고 주장할 수 있다. 유리한 전장(戰場)이다. 걱정되는 곳은 논리가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대내 부문이다.
우 실장은 합리적인 관료다. TPP 참여 발표 자리가 쌀 시장 개방 논란으로 비화할까봐 답변을 얼버무렸을 것이다. 그러나 ‘관세화 거부’로 전달된다면 곤란하다. 미리 올바른 답변을 준비했어야 옳다.
“정부의 기본입장은 쌀 농가 보호다. 국내외 시장 변화에 맞춰 가장 유리한 방안을 관철하겠다”라고.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