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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교통량 많은 도심서 가두행진 허용… 툭하면 ‘아수라장’

입력 | 2013-12-10 03:00:00

집회시위 신고제도의 허점




7일 오후 열린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가 서울 도심 교통을 마비시킨 것은 불법 차로 점거를 해야만 집회의 목적을 알릴 수 있다는 후진적 집회 문화와 집회 신고를 접수하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한 경찰의 안이한 행태가 빚어낸 합작품으로 분석됐다.

이날 시위는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한 대로 합법적 집회로 시작됐다. 주최 측은 3가지 행진 신고를 냈다. △독립공원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2개 차로 행진 △종로 보신각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2개 차로 행진 △서울역광장에서 숭례문과 을지로1가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진행방향 모든 차로 행진이었다. 독립공원과 보신각에서 시작된 행진은 신고된 대로 끝났지만 서울역 광장에 집결해 본집회를 마치고 서울광장으로 행진하던 시위대는 오후 4시 46분경부터 예정에 없던 도로 점거를 하고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봉쇄선은 곳곳에서 뚫렸다. 경찰은 시위대의 선두 그룹이 한국은행 방향으로 진출하는 것은 막았지만 차로를 점거한 채 웨스틴조선호텔 옆길을 통해 을지로1가 롯데백화점 앞으로 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해당 지점을 경비하던 경찰력은 종로1가를 경비하러 이동한 상황이었고, 숭례문에 있던 경찰 중대가 소공로로 이동했지만 시위대는 이미 차로를 점거한 뒤였다. 을지로1가에 있던 시위대의 후미가 전 차로를 일시 점거하고 명동성당 길과 을지로 외환은행 옆 골목을 통해 종로3가에 집결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태평로, 염천교, 종로3가를 포함한 종로 곳곳에 저지선을 쳐 시위대가 청와대 근처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며 “경비할 인력이 부족해 시위대가 골목을 통해 행진 경로를 이탈하는 것까지 모두 차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137개 중대, 1만 명가량의 경찰력을 동원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지점에) 경찰력을 나눠 배치해 차단막을 형성하지만 시위대의 행진 시에는 충분한 인력이 따라붙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현장 채증 사진 등을 바탕으로 불법 도로 점거 주도자나 적극 가담자를 소환 조사해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대의 불법 차로 점거는 이미 예견된 것으로 경찰이 행진 금지를 통보했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국대회 준비위가 ‘청와대로 가자’는 내용의 선전물을 4일 배포했기 때문이다.

설령 시위대가 불법 차로 점거를 하지 않았을 경우라 해도 교통량과 유동인구가 많은 주말 오후 1만1000여 명(경찰 추산)에 이르는 시위대가 서울 한복판에서 가두행진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감안하더라도 주말 도심 집회는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주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집시법 12조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세종로 태평로 등)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으면 금지할 수 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집시법이 규정하고 있는 만큼 경찰은 시민 피해가 큰 주말 도심 시위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론도 있다. 한 인권단체 소속 변호사는 “도심 행진을 무차별적으로 금지한다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행진 자체를 금지할 경우 시위대가 소규모로 이동해 곳곳에서 재집결한 뒤 도로를 무단 점거하기 때문에 더 큰 교통 혼잡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교통 소통 원활화를 위한 집회 금지·제한 통고와 관련된 법원 판결은 사안마다 다르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3월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를 행진하겠다고 신고하자 경찰이 이를 금지했다. 노조가 법원에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경찰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5월 19일에는 금속노조가 태평로를 건너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행진하겠다고 신청하자 경찰이 이를 금지 통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조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인용해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 시위를 주도한 전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내는 집회신고를 접수하지 않는 방법으로 불법 시위의 발생 소지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 시위를 주도했던 단체는 다시 불법 시위를 개최할 가능성이 크다”며 “집시법에 불법 시위 전력자에 대해 집회 개최를 제한하는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종엽 jjj@donga.com·백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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