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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변방의 무한 혈투

입력 | 2013-12-10 22:35:00

중국,아시아 패권 싸고 미국과 경합… 일본도 대동아 주도권 양보 안할 것
국제정치 무대에서 한국은 관심 밖… 북한 핵문제 해결도 더 아득해져
이 시각, 한국정치는 오로지 內戰만… 무한 혈투극 뒷전엔 흔들리는 國運




배인준 주필

대한민국. 실효적으로는 한반도의 남쪽 45%만 지배하고, 휴전선에 가로막혀 섬 아닌 섬이다. 지구 땅덩어리의 0.07%밖에 안 되는 국토, 더구나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 이를 딛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개방 국제화 노선으로 북한의 40배, 세계 10위권 경제를 이룩한 나라. 군사력은 세계 8위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 간 파워 게임에서 1, 2, 3위와 8, 9, 10위는 몇 단계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 우열이다.

중국. 세계 2위 경제대국을 넘어 10년 뒤면 미국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할 가능성이 크다. 21세기 중반이면 군사력도 세계 최강이 될지 모른다. 역사상 처음이 아니라 이미 15세기 중반까지 세계 중심 국가로 패권국 DNA를 내장했다.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 이후 서양과 일본한테 수모를 겪었지만 중화(中華)사상으로 불리는 중국 중심주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질서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고, 예속된 주변국들은 그 질서에 따름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수직적 질서관이 완고하다. 한국에 비해 국토는 95배, 인구는 28배이다. 한반도 고대역사의 상당 부분을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은 중국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포석이다.

일본. 경제력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지만 110∼120년 전 영미(英美)의 지원 아래 중국과 러시아를 패전국으로 추락시킨 나라. 그 청일(1894년) 러일(1904년) 전쟁은 부끄러운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놓고 땅따먹기 한 전쟁이었다. 이들 나라의 총구가 한민족의 운명을 갈랐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 아래 아시아 지배에 나섰던 제국(帝國),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까지 감행했던 일본이다. 두 기의 원자폭탄 앞에 항복하고 미국이 만들어준 질서에 순응하며 비군사 노선을 걸었지만 다시 미국과 군사적 역할을 분담하기에 이르렀다. 당장은 중국에 밀리는 형국이지만 언젠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넘어 아시아 지배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할 것이다. 일본의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은 세계 2위 군사대국도 넘볼 수 있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의 동맹인 미국이 한국을 위한 군사적 전개를 하려 해도 정보(情報)를 비롯해 일본의 군사적·비군사적 도움 없이는 신속 완벽한 전개를 할 수 없다. 한국에 비해 인구는 2.6배, 국토는 3.8배이다.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포함한 일본 관할수역 면적은 한국의 11배에 이른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 제해권(制海權) 경쟁에 돌입했다. 오키나와-대만-남중국해를 잇는 제1도련(島련)을 자국 영역으로 확정했다. 2020년이면 제2도련(사이판-괌-인도네시아)까지 확대하고 2040년에는 미 해군의 태평양·인도양 지배를 저지한다는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 실현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꾸고 있다면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재건의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게 아닌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은 일본이 필요하고 일본은 미국이 필요하다. 일본의 군사적 재대두는 미일 동맹의 합작품이다.

지금 워싱턴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중국과 일본 얘기가 무성하다. 한국은 관심 밖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 내의 일본인들이 ‘한미 결속, 미일 소원’ 상황에 한숨짓던 모습이 완전히 역전된 분위기이다. 수년 전 한국을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일본 언론 워싱턴특파원들이 지금은 미일동맹을 한국 특파원들에게 자랑한다. 북한도 워싱턴의 주목 대상이 아니다. 한반도가 미국의 국제질서 관리에 주요 변수가 못되고, 북핵 문제도 어젠다에서 밀렸다는 뜻이다. 한미 포괄동맹이 삐끗하는 날이 오면 중국과 일본, 북한까지도 한국을 운동장 모퉁이의 천덕꾸러기처럼 대할 것이다. 주변국들에 화내거나 말 트집 잡는 것만으로는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다시 한국. 대국 간 질서변화 틈바구니에서 북한과 종북세력의 협공까지 받으며 상시 안보불안 상태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는 먹통이고, 북핵문제 해결은 더 아득해졌다. 장성택 숙청극이나 한가하게 구경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북한은 탐지가 어려운 이동식을 포함해 1000기의 미사일을 쥐고 있다. 여기에 핵탄두가 장착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시각, 한국 정치는 내전 중이다. 1년 전에 싸웠듯이 반년 전에도 싸웠고, 어제 싸웠듯이 오늘 또 싸운다. 대국들 틈새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정치의 무한 혈투극이다. 정치꾼들 눈에는 한국을 둘러싼 세계 풍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이들에게 진정 한국은 있는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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